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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동학군 지역의 한 학교, ‘서울대 수시 1차 합격 학생 명단’을 교문에 내걸었다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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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으로 아이들의 장래가 결정된다는 것은 한때 통했던 사실인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학력이라는 것이 그 의미가 퇴색하고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에 따라서 각양 직업군이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에서 이제 점차 그 학벌에 얽매인 노예생활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회의 구성이 오늘날 처럼 세분화되지 않았고 직업의 숫자가 지금보다 적었던 관계로 학력은 곧 보다 상위의 계층으로 나갈 절호의 찬스이며 유일한 길이었는지 모른다. 특별한 계층이 아니라면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은 계급사회가 아니어도 영구히 인간의 본능중 하나일 것이다. 특별히 가진것 없고 힘없는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성장시기를 돌아보며 내 자녀에게는 보다 좋은 삶의 조건을 마련해 준다는 일종의 보상심리로 인한 과도한 학습열(이것이 학습열인지는 모르겠지만)로 이런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온 측면이 없지않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회나 국가의 사람을 받아들이는 조건중 하나가 학벌이라는 밑그림을 가지기 때문이겠지만 여하튼 공부한다는 것은 출세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글쓴이의 부모 세대는 공부 열심히 해서 ‘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최고인줄 알고 지금도 글쓴이가 이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지 못한 관계로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말씀을 한다. 가끔은 듣기 민망할때도 있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된다. 이쯤에서 글쓴이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한다. 글쓴이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아이와 3학년이 되는 아들아이가 있는데, 둘의 특성이 극과 극이라 학교 생활도 아주 다르다. 딸애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데 성적표를 보면 100점이 아닌 것이 거의 없다. 있다면 한심한 실수거나 착각일뿐이지 하여간 공부라는 종류는 죄다 잘한다. 경시대회는 물론이고 여러가지 공부에 관련된 행사에는 그 이름이 무조건 들어있고 상으로 받아오는 종이쪼가리는 집에 넘친다. 세칭 ‘공부 무쟈게 잘하는 아이’다.(초등학교 공부가 뭐 대수랴 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데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양궁을 하는데 이제 일년쯤 했는데 학교대표선수다. 선생님의 말씀도 재능이 탁월해서 선수로 대성할 재목이라 말씀하시는데 정말 잘한다. 아이에게 공부를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특기가 있으면 그것을 열심히 하라고 할 뿐이다. 나는 그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때까지 여러모로 도와주는 조력자일뿐 결코 아이의 미래를 단정해서 결정하는 전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은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대신 싸움박질은 얼마나 잘하는지 타고난 싸움꾼의 소질이 엿보인다. 3학년에 올라가지만 거의 5학년들을 포함해서 속칭 ‘짱’이다. 6학년은 너무 차이가 많이나서…. 그렇다고 쌈박질을 밥먹듯 하는 것은 아니고 누굴 닮았는지 부당한 것은 참지를 못하는 정의파라서 여자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좋다. 쌈박질의 대부분이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에 대한 응징을 과감하게 하는 편이라 그런가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공부로 말할것 같으면 누나와는 딴판이어서 1학년때부터 받아쓰기 시험에서 평균적으로 50점을 받는 경우가 거의없다. 게다가 공부하는 집중력도 떨어져서 산만하기가 이루 말할데가 없다. 선생님도 가끔 아이 때문에 정신없다는 말씀을 하시니 이것참 골치아프다. 그런데 이 아이가 과학과 수학에는 이상스럽게 집착을 하는데 그 두 과목은 탁월하게 잘한다. 나는 아이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여겨 볼 뿐이다. 현수막의 격문은 명문대 지상주의를 강요한다. 현수막으로 시비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현수막에 적힌 글귀는 우리에게 학벌지상주의로 나가라고 웅변하는 구호와 같다. 마치 선동하는 격문과 같다는 말이다. 공부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공부만 잘하는 것이 지상과제인양 아이들을 몰아가지 말자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명문대와 고시 합격이 인생의 목표인 양 주입하는 것은 공교육의 장인 학교에서는 지양할 일이다. 이미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특성에 따른 무수한 미래가 열려있는 시대로 변했는데 아직까지 통칭 사회라 불려지는 답답한 고집만이 이 변화를 외면한다. 학교도 부모도 외면하기는 오십보 백보다.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 예전에는 비웃음을 살만한 일도 지금은 당당히 전문분야로 인정을 받고 능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인생 살아가는데 지장없다. 게임을 잘해서 프로게이머가 되기도 하고, 춤을 잘추는 이유로 잘나가는 춤꾼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날라리 아니면 오락만하는 빗나간 아이들로 치부했지만.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의 현수막 철거 운동이 비단 헝겊쪼가리를 치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 격문이나 구호에 매달린 힘겨운 우리 아이들의 일상과 획일화된 교육의 틀을 깨자는 취지로 이해되는 까닭에 이 신선한 운동에 감탄을 하는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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