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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8 19:28 수정 : 2007.02.08 21:26

교육과정 수정 촉구 전국학교운영위원협의회와 바른교육권실천행동 등 12개 교육·시민단체가 지난 6일 서울 중구 정동 배재학술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경화 바른교육권실천행동 정책실장(오른쪽 두번째)이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교사 중심 교육과정을 폐기하고 자율적인 학생중심 교육과정으로 수정할 것’을 촉구하는 회견문을 읽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교육과정 개정안’ 뭐가 문제길래…

교육과정 총론 개정안이 지난달 12일 공개된 뒤로 ‘학습 부담을 늘린다’는 주장과 ‘전인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맞서는가 하면, 일부 과목의 분리 요구가 제기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심지어 “교과 이기주의”, “이해집단의 권력투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논란을 들여다보면, 초·중·고 학생들이 배울 핵심 내용인 교육과정의 개정안을 3년 넘게 준비하면서 토론이나 심의,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이수단위 10% 늘리고 예체능 필수과목으로
“입시 부담만 늘어” “전인교육에 도움” 맞서

“학습 부담 가중” 대 “전인교육 도움”=개정안은 고교 2~3년 학생의 선택과목을 총 이수단위(136단위)의 10%까지 더 늘릴 수 있도록 했다. 편제표에 없는 ‘통합 논술’, ‘영어 논술’ 같은 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수업시간을 주당 3시간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입시를 앞둔 고 2·3학년의 경우 입시 과목의 수업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진영효 전교조 참교육실 정책실장은 “이는 보충수업으로 해 오던 과목들을 정규 수업으로 합법화해 주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2~3학년의 선택과목군을 늘린 점은 ‘학습 부담 가중’ 논란을 불렀다. 교육부는 입시 과목의 편중 완화와 ‘교양교육 강화’를 내세워, 현재 5개인 선택과목군을 7개로 늘렸다. 기술·가정, 체육, 예술(음악, 미술) 과목군에서 꼭 한 과목씩은 듣도록 해, 필수 과목이 6개에서 8개로 늘게 된다. 교육부는 “입시 공부에 밀려, 학생들의 고른 발달에 필요한 예·체능 과목이 외면당하기 때문”이라며 “이수 과목은 그대로이고 필수 과목 수만 늘어난 것이어서 부담이 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선택 폭이 줄고 공부 부담이 가중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윤지희 ‘교육과 시민사회’ 회장은 “이제 학생들은 기술·가정을 무조건 공부해야 하고, 음악·미술 내신을 대비하려고 학원을 찾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학과 역사 교육 강화를 위해 고 1학년의 주당 수업시수를 각각 1시간씩 더 늘린 것도 학생들에겐 학습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지금의 국가 수준 말고도 시·도 교육청 수준에서 할 수 있게 한 것을 두고, “학교·학생 정보 비교를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견해와 “학교를 평가, 곧 시험에 대비하는 곳으로 변질시키며 학생들에게 시험 공부 부담을 더할 것”이라는 의견이 맞선다.

음·미·체 평가방식 변화=교육부가 음악·미술·체육 과목의 평가방식을 점수가 아니라 서술형이나 3등급제로 바꾸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선택과목군 확대로 체육, 음악(또는 미술)이 필수 과목이 된 것을 두고, 학습부담 가중 주장이 제기된 직후였다. 문화·예술·체육 관련 단체와 해당 과목 교사들은 이에 극구 반대하고 있다. 박만용 부천 부명중 미술교사는 “평가방식을 바꿀 경우 이는 ‘내신 제외’로 이어지고, 학교에서 외면당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내신 대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박 교사는 “거의 모든 대학이 입학전형에 이들 과목의 내신을 반영하지 않는데, 누가 과외를 하고 있고, 또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지리 과목도 분리=중1~고1년 ‘사회’ 교과에서 역사를 별개의 과목으로 떼어내면서, 지리도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전공하지도 않은 교사가 가르치면서 수업의 질이 떨어져, 학습권 침해와 교사 사이의 갈등으로 시달려 왔다는 근거에서다. 2000~2001년 반발이 거셌던 기술·가정 과목처럼 ‘억지 통합’돼 갖가지 부작용이 쌓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교육부의 태도는 완강하다. 김대원 교육부 교육연구관은 “역사 과목 분리는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왜곡 등으로 사회적 요구가 컸기 때문”이라며 “과목을 또 분리하면 통합 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집단 사퇴했던 사회과 교육과정 심의위원들이나, 전국지리교사모임은 과목 분리가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학년별 영역(지리 또는 일반사회) 집중이수제’라도 채택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수범 최현준 기자 kjlsb@hani.co.kr


교육과정 개편

개정안 심의부실, 왜?

심의회 2시간에 안건설명만 1시간
자료 하루전 나눠주고 “검토하세요”

공청회 참석자 미리 선정도

애초 이번 교육과정 개편에 착수하면서 교육인적자원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취지는 ‘주5일제 대비’다. 그래서 수업 시수 감축에 초점이 맞춰졌다. 교육부는 처음엔 주 2시간을 줄일 계획이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 연구도 위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5일제 대비’ 뜻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시안에도 수업 시수 감축은 반영되지 않았다. 박제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장은 “주5일제는 교육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전면 시행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교육과정 개편에 반영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애초 교육과정 개편의 취지는 없어진 셈이다. 개정에 참여했던 교육부의 한 실무자는 “솔직히 철학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럼 왜 하고 있을까? 교육부는 이제 와서는 “이번 개정은 7차 교육과정의 수정과 보완”이라고 설명한다. 2009년이면 교과서 개정 10년이 되는데, 그대로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학교 차원에서 7차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나온 운영상의 문제점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곧 전면적인 개정이 아니라 일부 바꾸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내용이나 취지의 실종은 그렇다 치고, 논의 구조나 절차는 적절하게 진행됐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이번 교육과정심의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우선 대부분의 심의회가 형식적으로 진행됐다. 심의회 인원이 대체로 20~30명이었는데, 회의 시간은 2시간 남짓이었다. 참석자들이 한마디씩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초등심의위원인 신은희 충북 음성 남신초등학교 교사는 “교육부 직원이 안건 설명을 하는 데만 30분 가까이 걸리는데, 무슨 회의가 됐겠느냐?”고 말했다. 자료도 회의 시작 하루 전에 나눠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대로 검토할 시간조차 없었던 셈이다.

회의 내용도 최종 심의본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사회과의 경우 토론회와 1차 심의회에서 참석자 18명 가운데 17명이 결의한 ‘학년별 영역집중제’가 일방적으로 무시됐다. 이에 항의해 13명이 위원직을 사퇴했다. 음악과는 20명의 심의위원 가운데 7명으로 비공개 소위원회를 따로 둬 ‘밀실 결정’ 의혹을 샀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마지막 회의 뒤 검토 단계에서 소위를 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지난달 12일 열린 공청회는 참석 인원을 제한해, 공청회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했다.

유명무실한 심의회는 사실 애초부터 예상됐다. 교육과정정책과의 한 연구관은 “심의회는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이지 의결기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의결기구로 하면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심의회가 그런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국어과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상룡 동덕여고 연구부장은 “회의에 처음 들어갔더니 ‘골격은 다 완성돼 있으니까 큰 틀은 바꾸기 어렵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결국 이름만 심의회이지 실제로 형식적 자문기구에 불과했던 셈이다.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인 김정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대표는 “그간의 과정을 보면 교육부가 그림은 다 그리면서 심의회나 공청회, 토론회 등을 들러리나 요식행위로 이용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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