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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괘, 숫자서 추상화로 |
김수중교수의 철학산책
1973년 마왕퇴 한묘에서 ‘비단에 쓰여진 주역(帛書周易)’이 나왔다. 이것은 주역에 대한 많은 전설과 의혹을 풀어주었다. 또 1970년대 이후 은대의 도자기 파편이나 갑골, 그리고 청동기에 새긴 글(銘文)이 다수 해독되면서 주역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근래에 알려진 사실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양효(一)와 음효(--)로 괘를 표현하기 이전에 먼저 숫자로 괘를 표현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가령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에 ‘七五七 六六六’ ‘八六六五八七’ 등으로 해독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음양으로 나누어 괘로 표현하면 **와 **이 된다. 바꾸어 말해서 오늘날 음효와 양효로만 표현되는 고도의 추상화는 비교적 나중에 실현된 것이며 이전에는 1, 5, 6, 7, 8, 9 등의 숫자를 이용해 괘를 표현했던 것이다. 양효는 일찍부터 일자(一)로 표현하였으나, 음효는 처음에 6을 *으로 표시하거나 8을 八로 표현하다가 결국 --의 표식으로 귀결된 것이다.
지금까지 삼획으로 표현되는 팔괘를 복희씨가 먼저 만들고 이후로 그것을 상괘 하괘로 겹쳐 육획괘(64괘)를 완성했다는 가정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숫자괘설’은 이와 정반대의 순서로 괘가 등장했음을 보여 준다. 숫자괘는 6개 혹은 3개의 숫자로 구성돼 있는데, 대부분은 6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것들이며, 그 출현 빈도수에 비추어 볼 때 64괘가 8괘보다 먼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8괘의 상(象)을 통해 64괘의 구조와 내용이 설명된다.
주역에서 철학적 내용은 공자의 저술로 전해져 온 10개의 주석(易傳 혹은 十翼)에 나타나 있다. 그런데 <백서주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전국 말이나 한대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동쪽의 문화 중심인 제나라 수도에서는 여러 학파가 종합되며 발전하고 있었는데, 주역에 대한 주석들도 이들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사상 등이 내포돼 있으며, 우주와 인간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한대의 세계관이 기본 구조로 들어 있는 것이다. 이후로 주역은 모든 현상을 대립적인 것들의 상보적 통일성으로 파악하는 전통사상의 원천이 되었다.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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