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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쏘우>에서 관객들은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범죄자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지만, 범죄형 ‘얼굴’에 대한 편견은 오래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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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 과학] 쏘우 2004년, 감독 제임스 완, 출연 캐리 엘위스, 리 와넬, 대니 글로버 <양들의 침묵>이나 <유주얼 서스펙트> <세븐> 등과 비슷한 스릴러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문도 모르고 지하실에 감금된 아담(리 와넬)과 의사인 닥터 고든(캐리 엘위스)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그들을 감금한 범인이 제시한 단서와 자신들의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범인의 윤곽을 서서히 잡아간다. 지하실 밖에서는 탭 형사(대니 글로버)가 범인을 잡기 위해 추적을 하고 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등장인물 사이의 연관성이 드러나고, 결국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놀라운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쏘우>나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관객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전혀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다룬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범죄형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범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 범인일 때 반전을 경험하는 것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큰 턱과 튀어나온 광대뼈를 가진 얼굴이 전형적인 범죄형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누가 보아도 범인일 것 같은 사람, 즉 타고난 범죄형 얼굴이 있을까? 19세기 범죄인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롬브로소는 범죄형 얼굴이 있다고 생각했다. 롬브로소는 수많은 범죄자를 조사한 뒤 선천적인 범죄자의 얼굴을 가려내 발표했다. 그는 범죄자의 얼굴에서 원숭이의 특징을 찾으려 했고, 이러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선천적인 범죄자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원숭이의 특성은 큰 턱이나 튀어나온 광대뼈, 벌어진 엄지발가락과 같은 외모뿐 아니라 지독한 게으름이나 무책임성과 같은 성격까지 포함되는 것이었다. 롬브로소의 범죄인류학은 당시 과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범죄자는 타고나기 때문에 자란 환경보다는 생물학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선천적인 범죄자에게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며, 같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더 무거운 형을 부과하고 석방한 뒤에도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량을 정해 놓지 않고 ‘10년 이하의 징역’과 같이 범위만 설정해 놓은 부정기형이나 가석방 등이 등장하게 된 것은 이러한 영향이 크다. 선천적인 범죄자와 관련된 또 다른 소동은 1960년대에 등장한 XYY형 유전자를 가진 남자에 대한 것이다. XYY형은 정상인보다 Y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난 남자로, 범죄자나 정신병원 등의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공격적이고 대부분의 연쇄 살인범이 남자라는 것을 고려할 때 Y염색체를 하나 더 가진 사람이 폭력적일 것이라는 너무나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한 주장이었다. 대부분 XYY형 유전자를 가진 남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연구가 이러한 소동을 불러온 것이었다. 이후 많은 연구에 의해 롬브로소의 주장과 XYY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선천적인 범죄자라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한 것으로 밝혀졌고, 오늘날에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얼굴에 대한 인간의 편견은 생각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많은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XYY형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살인범이 무죄로 풀려난 일도 있었다. 섣부른 유전적 낙인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사례다. 최원석/김천중앙고 교사 nettrek@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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