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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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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1900~1980). 미국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나치 정권 아래에서 파시즘의 선풍에 대중이 말려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뒤 ‘근대인에게서의 자유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에 전념했다. 저서로는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건전한 사회>(1955) 등이 있음. ● 본문 맛보기 소유 양식을 가진 학생이라면 어떤 강의를 잘 들으면서, 나오는 단어들을 듣고, 그 논리적 구조와 의미를 이해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자기네 공책에 단어를 일일이 적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가 노트한 것을 암기하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 세계의 일부가 되어, 그걸 풍부하고 넓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는 대신 그들은 자기네가 들은 말을 고정된 사고 군(群), 다시 말하면 총체적인 이론으로 변모시켜 이를 저장한다. 학생들과 강의내용은 서로 남남이다. 단 학생 각자가 다른 누군가가 한 말(그가 만들어 냈거나 다른 근거로부터 따온 말)을 모아 놓은 수집품의 주인이 되는 것뿐이다. (중략) 세계에 대해 존재 양식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학생에겐 학습 과정이 전혀 다르다. 우선, 이들은 강의에, 심지어는 한 과정의 첫 강의에도 ‘백지 상태’로는 출석하지 않는다. 이들은 강의에서 다뤄질 문제들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의문과 문제를 염두에 둔다. 이들은 그 주제에 몰두해왔고, 또 주제가 이들의 흥미를 끈다. 갖가지 어휘나 관념을 담는 수동적인 그릇이 되는 대신, 이들은 경청하는 가운데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응을 보인다. 이들의 듣는 내용이 이들 자신의 사고 과정을 자극한다. 새로운 의문, 새로운 관념, 새로운 전망이 이들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들이 강의를 듣는 과정은 하나의 살아있는 과정이다. ● 내용 & 생각거리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리히 프롬은 일상적 경험을 들어 구체적으로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을 대비시킨다. 이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례인 ‘학습’에서 소유 양식 및 존재 양식에 뿌리를 둔 학습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고, 자신의 학습 습관을 점검해 보자.
느림을 통한 인간 자유의 회복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998)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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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피에르 쌍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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