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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 열려요
개구쟁이 철이와
찾아볼까요 아이쿠, 그런데 이를 어쩌나. 서리한 벌을 받느라 그런지 배가 아파요. 거름을 만들려면 똥은 꼭 집에 가서 싸야 한다고 아빠가 늘 일렀지만, 별수 있나요. 똥구멍을 꽉 틀어막고 풀숲에 가서 바지를 내렸죠. 그런 철이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있던 황소도 참외밭 옆에 한무더기 똥을 쌌네요.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똥개 누렁이도 같이 볼일을 봤어요.
강에서 멱감고 한숨 늘어지게 자는데 소나기가 내려요. 철이의 똥과 황소의 똥과 누렁이의 똥은 땅으로 잘도 스며들어 기름진 거름이 되지요. 때마침 살살 불어온 바람에 실려 참외씨 하나가 떨어졌어요. 자, 두고 보세요. 밭에서 자란 참외들이 다 시장에 팔려가고 난 늦여름에, 여기서 개똥참외가 열릴 테니까요. 아무도 모르게, 누가 볼세라, 조심조심 자라나지요. 그 비밀을 철이 동생이 먼저 알아챘어요.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동생이 개똥참외를 먹어버린 거예요. “개똥참외는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야.” 화가 잔뜩 난 철이한테 냉큼 혀 내밀면서 말이죠. 철이는 내년 여름에 참외밭 옆에서 다시 한번 똥을 싸야겠네요. 하늘과 땅이 키운 개똥참외는 자연의 소중함을 담뿍 담은 열매예요. 저 혼자 자라는 개똥참외가 많은 땅이야말로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겠죠? 〈벼가 자란다〉 〈똥 똥 귀한 똥〉 등 재미난 그림책에 많은 그림을 그려온 지은이가 이번에 처음으로 글을 짓고 그림을 함께 그려 책으로 냈어요. 들여다보고 있으면요, 너도나도 바지 내리고 참외밭 옆에서 시원한 똥 한번 싸고 싶을걸요? 취학전, 김시영 글·그림. -문학동네어린이/9800원.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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