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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1 13:20 수정 : 2005.04.11 13:20

일선 학교에서 여학생의 두발과 복장에 대해 정해놓은 규정을 나타낸 그림판. 김영인 기자 \


[현장] ‘21세기단발령’을 바라보는 중딩·고딩

“잡초 잘려나가듯 소중한 머리칼이 잘려요.”

“학생 주임이 두발 순찰을 ‘뜨면’ 걸릴 것 같은 애들은 양호실·방송실·화장실 여기저기 숨기 바빠요. 선생님이 가위를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종이 자르는 칼을 갖고 다니는데다가, 걸리면 3일 동안 교내 봉사를 해야 하거든요. 이렇게 억압만 받다가 사회에 나가서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지 걱정돼요.”(서울 ㅅ고 천아무개 학생)

학교에서 선포한 ‘단발령’에 대해 학생들이 ‘봉기’를 할 참이다.


이 땅에서 ‘단발령’은 19세기의 한 상징이다. 1895년 권력을 잡은 김홍집 내각은 내정개혁 차원에서 단발령을 선포했고, 당시 관리들은 가위를 들고 거리나 성문 등에서 강제로 백성들의 머리를 깎았다. 학생들은 자신들을 ‘21세기 단발령의 피해자’ ‘죄수보다도 못한 집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이들은 “학생은 학생답게”라는 어른들의 숨막히는 ‘교시’에 답답해하고 있다. “개성을 살리겠다고 두발 자유화를 주장하는 게 아니에요.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자기결정권을 학생들이 행사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죠. 학교는 잡초 뽑는 것보다 쉽게 아이들의 머리를 자르고 있어요.” 신지예 한국청소년모임 대표(중계중 3년)의 말에는 ‘학생인권’ 확보의 시급함이 녹아 있다.

“교권을 부리더라도 학생 인권은 보장해줘야죠.”



신양같은 청소년들이 지난 9일 연세대학교의 한 강의실에서 ‘학교 두발규정,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마치 당장 ‘봉기’라도 벌일 기세였지만, 결코 ‘감정적’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헌법을 들고 나왔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추구권’이 학생들 논리의 토대다. 중고교 학생회들의 연대모임인 ‘발전하는 학생회 가자’ 대표 전누리(구로고 3년)군은 “ㅇ중의 경우 학생 주임과 체육 선생님의 단속기준이 달라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ㄱ고는 학생주임이 수업시간에 갑자기 들어와 머리를 깎는 등 문제가 많다”며 “선생님이 교권을 부릴 때 최소한 학생의 인권은 보장해줘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ㅎ여중 3학년 김아무개양은 “‘교권신수설’이 있는 한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거들었다.

“학생들도 너무 감정적. 인터넷 분풀이로 끝내지 맙시다.”



이날 토론회에서 학생들은 ‘동지’를 만난 기쁨에 자기 학교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두발 규제 사례를 쏟아냈지만, 기성세대를 향한 날선 비판에만 머무르진 않았다. 토론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학생은 배문고 2학년 맹주영군이다. 맹군은 학생들의 대응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요즘 학생들 너무 감정적이에요. 논리도 없이 머리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만 하면 뭐합니까? 또 우리의 목표는 ‘두발자유화’인데 일부 학생들은 ‘5㎝만, 10㎝만 기르게 해달라’고 애원해요. 인터넷에서 분풀이하는 것으로 끝내지 맙시다. 학생회 기능을 활성화시켜 교사·학생·학부모가 토론을 벌여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구요.”


그는 ‘머리가 길면 공부가 안된다’는 어른들의 논리에 대해, “조선시대에는 머리 긴데 다 장원급제하고 공부 잘하지 않았느냐”라는 말로 받아쳤다. ‘머리가 길면 학생들이 유해업소를 출입하고 술·담배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그런 탈선을 저지르지 않도록 법을 강화하면 되지 학생들의 머리를 자른다고 해결될 순 없다”고 반박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학생회 통해, 계획 세워 두발자유화 이뤄내야죠.”

학생들이 이날 도달했던 결론은 ‘학생회를 통한 두발 규제의 합리적 해결’이었다. 서울 ㅎ여중 3학년 김아무개양은 자신의 학교 사례를 들며 “학생회장이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해 학교에서 허용하는 머리 길이가 어깨에서 겨드랑이선까지 길어졌다”고 말했다. “선생들하곤 대화가 안돼”라고 등돌려선 문제 해결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학생들이 자각한 것이다. 학생들은 문제 해결 방식이 최대한 구체적이어야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여기(토론회)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만약 우리가 촛불시위를 벌인다면 누가 주관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죠? 지금 많은 얘기를 했지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히 대답을 못하지 않나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논의를 했으면 합니다.”(정신여고 3학년 김하나다슬 양)

학생들은 토론회가 끝난 뒤 모듬별로 모여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해 오랜 시간 토론을 벌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애들이 생각없이 터뜨리는 불만’이라고 어른들이 여기지 않도록 하나하나 착실히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영인 기자 soph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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