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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8 16:48 수정 : 2005.05.08 16:48

‘보도 사진의 성자이며 순교자적 인물’이라고 불리는 유진 스미스의 대표작 <역 플랫폼에서>.

스타강사 이만기의 언어영역 해부

사회병리 ‘한컷’으로 웅변

비가 온다. 하늘을 적신 비가 하중을 이기지 못해 지상으로 추락한다. 아예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는 ‘보도 사진의 성자이며 순교자적 인물’이라는 칭호답게 다큐멘터리적 시각으로 세계를 통찰하고 해부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사회의 병리를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는 진지한 태도에서 그의 장인 정신을 읽는다. 그러나 때로는 묘하게도 ①르포르타주적 예리함보다 시적 분위기를 담은 그의 사진에 더 매료되기도 한다.

이 사진은 그 중 하나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두 가지 묘한 상상에 빠진다. 그 하나. 기차는 연착이다. 집을 나설 무렵, 하늘은 흐려 있었다. 물 먹은 하늘이 미묘한 불안을 야기했지만, 그러나 기차만 탈 수 있다면, 더구나 아예 이곳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면, 비가 온들 무슨 상관이랴 생각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기차는 연착이다. 설상가상으로 오전부터 끈적하고 불쾌한 습기를 동반한 바람은, 이윽고 비를 몰고 온다. 플랫폼이 순식간에 비에 젖기 시작했다. 지루하게 기차를 기다리던 승객은 그만 짜증이 났다. 출발하기도 전에 불행을 만난 것이다. 유진 스미스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닐까.

혹은 역으로 다음의 추측도 가능하리라. 승객은 어제 밤기차를 탔다. 지난밤 거칠게 차창을 때리는 바람이 숙면을 방해했다. 그러나 새벽은 어둠의 끝자락을 붙잡고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늘은 아직도 짙은 먹물을 뿌린 듯 시커멓다. 차창 밖의 풍경은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람을 가르며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쾌속 항진하던 기차는 그러나 목적지에 가까울 무렵 멈칫멈칫 몸을 사렸다. 엔진에 이상이 왔다. 시간은 조금씩 야위어 가고 기차는 연착이다. 설상가상, 하늘에서 빗방울이 쩌억쩌억 내리치기 시작했다. 기차는 말처럼 헉헉 ②투레질하며 힘겹게 힘겹게 종착역을 향했다. 이윽고 시간의 흐름마저 무감각해질 무렵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힘에 부친 기차는 곧바로 쓰러졌고 피곤한 승객들은 역사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폭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플랫폼까지 퍼붓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잠깐 생각에 잠긴다. 어디로 간다…. 이곳은 처음인데….

사진은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것은 당연하리라.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세상에 던져진 사진 속 주인공. 우리는 그 주인공과 자신을 쉽게 동일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인간. 사르트르 식의 자유를 향한 실존은 늘 ㉠진취적이기보다 이렇게 외롭고 피로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한다.


돌처럼 무거운 가방은 감내하기 어려운 험한 일상을, 그리고 퍼붓는 비의 위세는 그가 대면한 냉혹한 세계를 비유한다. 비는 그를 벽처럼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가방. 그가 그동안 성취한 것은 고작 이것뿐이다. 굳게 닫힌 입술처럼 단단하게 채워져 터질 듯한 가방의 부피가 곤핍한 삶의 무게를 전달한다. 가방의 무게는 주인공의 삶을 짓이기는 것 같다. 더구나 가방은 플랫폼의 돌바닥과 굳게 밀착돼 있지 않은가. 유진 스미스 역시 그를 위에서 조감하며 끊임없이 추락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모든 것은 지면과 입맞춘다. 나는 새마저도 추락한다.…(중략)…

또한 냉혹한 돌바닥은, 죽지 못해 서서 ‘정신의 땀’을 흘리는 남자의 가슴을 향해 빗줄기를 탄환처럼 되돌린다. 그는 얼음처럼 굳었다. 갈 곳이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플랫폼에 서서 왕래하는 기차를 응시할 뿐이다. 이미 바닥과 코트를 적신 비는, 세상과 맞서지 못하는 그의 무력한 심리는 물론, 그가 플랫폼에서 소비한 시간의 양을 반영한다. 더구나 야속한 바람이 슬쩍 외투를 더욱 초췌하게 보이도록 하는 데 공헌한다. 거센 빗줄기, 잔인한 바람. 우산도 없이 그 중심에 홀로 던져진 자의 찢겨진 가슴을 누가 헤아릴 것인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그의 두려움과 공포를 누군들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과 대면한, 아니 세상의 힘에 유린당하는 한 인간의 왜소함은 이렇게 비통하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삶이며, 힘든 일상마저 극복해야 하는 것이 또 인간의 삶임을 인정한다면, 굳이 새처럼 나는 꿈은 꾸지 않아도 좋을지 모른다. 한국교육미디어 발행 <독서> 교과서, 조용훈 ‘사진으로 읽는 시’

[되짚기 마당]

◇ 용어 풀이

① 르포르타주(reportage): 1. 신문·잡지·방송 등에서의 현지 보고, 또는 보고 기사. 2.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는 현실이나 개인의 특이한 체험을, 관찰자의 주관을 곁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그린 문학. 기록 문학. 보고 문학.

② 투레질(blowing from the mouth): 젖먹이가 두 입술을 떨며 ‘투루루’ 소리를 내는 짓.

◇ 짬짬 강의

● 띄어쓰기 ㉠진취적이기보다(O)-진취적이기 보다(X)

‘보다’는 흔히 동사로 알고 있지만 부사(한층 더, 예)보다 좋은 방법), 보조 동사(시험 삼아 함을 나타냄, 예) 생각해 볼게), 보조 형용사(짐작이나 막연한 자기 의향을 나타냄, 예) 여기서 살까 보다) 그리고 조사로도 쓰인다. 조사로 쓰일 때의 ‘보다’는 두 가지를 비교할 나타낼 때 쓰이며, 조사이므로 체언에 붙여 써야 한다. 예)언니보다 동생이 더 예쁘다. 이만기/언어영역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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