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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보낸 마지막 3일 |
아버지를 보낸 마지막 3일
안효준/일산 백신고 2학년
1일
우리 아빠는 작년 8월17일 새벽 2시 경에 집 앞 네거리(집에서 약 500m 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으려고 대기 중에 있었는데, 반대쪽에서 스타렉스가 무면허에 음주운전 상태로 약 120km/h로 달려와 중앙선을 침범하여 아빠의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당시 아빠는 안전벨트를 하고 계셨지만 뇌진탕으로 돌아가셨습니다.…(중략)
2일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첫날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한 시간 동안 아빠 사진을 보면서 아빠와 아주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중략) 한편으로는 아빠와 얘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아빠와 얘기할 수 없어서 슬펐습니다. 새벽 3시에 잠을 겨우 잤습니다. 2시에 입관이 있었습니다. 입관하는 곳은 유리벽으로 막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두 손을 가슴에 X자로 포개어진 채 수의를 입고 있었습니다. 들어갔을 때 아빠의 얼굴이 잘 안 보였습니다. 같이 계시던 전도사님이 허락을 얻어 주셔서 유리벽 너머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문을 여니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얼굴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는 아빠의 얼굴을 만지면서 울었습니다. “여보! 왜 이렇게 차가워, 눈 좀 떠 봐! 생일날 관에 들어가는 법이 어딨어!” 동생도 아빠의 얼굴을 만지면서 울었습니다. “아빠 빨리 일어나! 부페 가야지! 오늘이 아빠 생일이잖아! 아빠 땀 많이 나서 선물로 손수건 사 놨단 말야.” 나는 아빠의 얼굴을 만지기가 두려웠습니다. 아빠의 얼굴이 찰까봐, 그리고 내가 답답할까봐. 난 결국 아빠의 얼굴을 만졌습니다.(중략) 마른 줄만 알았던 눈물이 폭포가 쏟아지듯 주르륵 주르륵 한꺼번에 쉴 새 없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는 아빠의 얼굴을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빠의 입 속에 있던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난 놀라서 손을 뗐습니다. 엄마는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아빠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습니다. 난! 갑자기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나 때문에 엄마와 동생이 더욱 더 울 것 같아서…. 그러나 엄마의 울음은 점점 사그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3일
셋째날 저는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차에 탄 후에 파주에 있는 선산으로 향했습니다.(중략) 아빠의 관이 놓일 장소가 정해지고 아버지의 친구 분께서는 저보고 위패와 영정 사진을 옆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하관을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날개가 엄지 손톱만한 백옥 같은 새하얀 나비가 나울나울거리면서 날아왔습니다. 날갯짓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 나비는 제 쪽으로 오더니 나를 한번 지긋이 쳐다본 후 위패로 갔습니다. 위패에 써 있는 글자를 읽는 듯하더니 아버지가 누워 있는 관으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관의 머리 쪽부터 팔, 손가락, 가슴, 허리, 다리, 발가락 끝까지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하며 아버지의 향기를 맡듯, 구석구석을 청소하듯, 자신이 마치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듯이 관 주위를 이리저리 맴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정 사진 앞에 있더니 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듯 날갯짓을 하였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변에 계시던 모든 사람들께서는 놀라셨지만 어느 누구도 한마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비가 주륵주륵 쏟아지는 사이에 벌써 그 나비는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나비의 날갯짓은 아버지의 천사의 날갯짓처럼 가벼웠습니다. 나비가 아니라 새털같았습니다. 저만치 날아가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빠!! 아빠가 와 줬으니까 이제 더 이상 좌절하지않고, 걱정하지 않고, 열심히 살게….’ 그렇게 나비가 떠나가 버리자 기다린 듯이 비가 그치고, 햇살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평> 눈물나는 생생한 체험
아버지를 보낸 이승에서의 마지막 3일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관하던 그날! 한 마리 나비로 오신 아버지의 애틋하신 마음. 님이 이 세상을 다하는 그날까지 돌아가셨어도 살아 계신 듯 님을 지켜 주는 힘이 되어 줄 것을 믿어요. 이낭희/경기 백신고 국어교사, 청소년사이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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