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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대박을 위해 다수가 출혈을 감수하는 로또 세계에선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곰살스런 인간관계는 생략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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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의 경제학 로또라는 말의 뿌리는 이탈리아어 ‘lotto’(행운)라 한다. 1530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피렌체가 공공사업을 위해 발행한 ‘피렌체 로또’가 최초로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번호추첨식 현대 복권의 시초다. 이 복권이 성공하면서 lotto라는 단어가 복권의 대명사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도 로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초엔 1등 당첨자가 자그마치 800억원이나 딴다 해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었다. 흥미롭게도 1등이 13명이나 나왔다. 이쯤 되면 한국인의 로또 실력은 세계가 인정할 정도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13명이 각각 65억원씩 가져갔으니 꽤 많은 사람이 ‘팔자 고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십만 명이 모두가 1등이 될 것처럼 믿고 매달리지만, 당첨되는 수십 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꽝’이라는 것이다. 생각컨대, 이런 로또는 사실상 ‘계’ 모임이 시장 논리로 이뤄지는 것에 불과하다. 원래 계란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돌아가며 한 사람씩에게 목돈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계원들 각자는 푼돈을 곗날마다 정기적으로 내는 대신 일정한 시기가 다가오면 목돈을 쥐게 되므로 열망하던 그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곗날은 사실상 계원들끼리 조촐한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곗날이 되면 사람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같은 밥상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삶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모두가 친구가 됐다. 전통적 의미의 계란 단순히 목돈을 마련하는 민간 조직이라는 의미를 넘어 일종의 생활공동체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로또는 이런 사람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들은 소멸되고 오로지 ‘운’ 좋게 목돈만 챙기는 놀음판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곗돈’ 할 때의 돈과 로또의 1등 당첨금 돈은 같은 돈이 아니다. 왜냐하면 곗돈의 돈에는 친밀한 인간관계가 깃들어 있는 데 반해, 로또 당첨금의 돈이란 인간관계가 해체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어머니 심부름을 하거나 아버지 구두를 닦아 드리고 용돈을 받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이런 돈은 내가 해 드린 서비스의 대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스런 자식에 대한 뿌듯함이 함께 녹아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우리가 심부름센터에 맡기거나 구두닦이 아저씨에게 맡기고 그 대신 정해진 비용을 내는 경우 여기서는 따뜻한 인간관계를 느끼기 어렵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맛깔스런 인간관계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계산적인 돈 관계만이 강하게 남는 것이다. 이렇게 로또 세계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끼리 더 많은 돈을 향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내가 1등하려면, 곧 일확천금을 얻으려면 수십만명이 ‘꽝’을 먹어야 한다. 또 내가 기꺼이 ‘꽝’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다른 사람 누군가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다. 이 돈의 세계가 가진 가장 비참한 점은 그것이 결과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곰살스런 삶의 과정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일상 과정과 느낌들, 서로 치고 박고 속삭이다가 함께 웃고 울기도 하는 그런 과정들이 모두 생략되거나 하찮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원래 경제라는 말도 그 뿌리가 살림살이라 하니, 이제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살림살이’ 경제를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 강수돌/고려대 교수 ksd@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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