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05 17:31
수정 : 2005.06.05 17:31
|
<반쪽이>
|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제일 신나요. 오늘은 이야기 속에서 반쪽이를 만날 거라고 했더니 강희도 형탁이도 도빈이도 다 아는 이야기라고 했어요. 반쪽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강희가 벌떡 일어나 얼굴에 힘을 주고 오른팔을 빨리 휘두르면서 소리치는 거예요.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씰룩거리면서 크게 맞장구를 쳐 줬어요.
옛날 옛날에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단둘이 아들 세쌍둥이를 낳았어. 근데 첫째하고 둘째는 멀쩡한데, 셋째는 반쪽이야. 눈도 하나, 귀도 하나, 다리도 하나씩만 있는 반쪽이 말이야. 어느 날 형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데 반쪽이가 따라오니까 부끄럽고 창피해서 커다란 나무에 꽁꽁 묶어 놓고 달아나 버렸단다. 반쪽이가 가만있겠어? 온 힘을 다해서 ‘끙’ 했더니 그 큰 나무가 뿌리째 쑤-욱 뽑히는 거야. 그 나무를 짊어지고 집에 오니 할머니가 웬 나무냐고 물었어.
“반쪽이는 우찌 살았을꼬?” “아들 딸 낳고 잘 살았지”
아이와 함께 얘기 만들면 재미와 즐거움 한가득
아이들이 금방 그 뒷이야기를 끌어가요. “할머니, 그늘에서 편히 쉬세요.” 반쪽이 마음으로 그늘도 만들 줄 아는 아이들이 이뻤어요.
마음이 고약한 두 형이 따라오는 반쪽이를 또 커다란 바위에 꽁꽁 묶어 두고 가 버리자 반쪽이가 다시 ‘끙’ 하고 힘써서 바위를 짊어지고 할머니 앞에 나타났을 때도 아이들은 얼른 자리를 펴 드렸어요. “할머니, 편히 앉아서 쉬세요.”
반쪽이가 그 무서운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아서 가죽을 홀라당 벗겨 가지고 오다가 욕심 많은 부자 영감을 만나요. 그때 아이들은 욕심쟁이 부자 영감이라도 만난 양 몸을 앞으로 수그리면서 크게 말했어요. “반쪽이가 바둑 두기 내기해서 두 번 다-아 이겨 버렸지~.”
다시 한 번 통쾌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지요. 온 몸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절로 흥이 나지요. “부자 영감을 물리치고 예쁜 색시 업어 와서 반쪽이는 우찌 살았을꼬?”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지.”
우리 넷이 서로서로 눈을 들여다보고, 호흡을 맞춰 가면서 단숨에 이야기를 마무리해 버렸어요. 이제 이야기는 다 끝났지만 반쪽이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우리를 즐겁게 해 줘요. 그 이야기의 재미와 즐거움으로 반쪽이는 내가 되고, 나는 반쪽이가 될 수 있죠.
이렇게 자리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우리는 같이 힘을 모으고 하나가 되어서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들을 만나고 물리치면서 느꼈거든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거예요. 반쪽이 이야기는 〈반쪽이〉(보림) 등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 책에 실려 있어요.
이숙양/공부방 활동가
animator-1@hanmail.net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