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6.12 14:55
수정 : 2005.06.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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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서울,경복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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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만큼 배웠다”며 항의, 배운만큼 헤아려줬으면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김 선생님이십니까? 저는 아무개 학생의 아버지입니다.” “아, 예. 그러세요?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오늘 우리 애를 통해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억울하게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하는군요. 우리 애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다른 아이가 떠들어서 자기가 혼이 났다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왜 다른 아이는 놔두고 우리 애만 혼이 나야 하는 거죠?”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학생은 옆 학생과 계속 장난을 치고 있었고, 분명 나는 그 아이와 옆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적을 당한 다른 학생은 자세를 바로잡았으나 그 학생은 불손한 태도를 보이며 잘못한 것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학생을 따로 불러 주의를 주었다. 그 학생은 그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아이 말만 들은 부모는 화가 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그때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수화기를 든 채 바로 학생을 불러 다그치며 사실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더니 “우리 아이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다시 학생에게) 너, 똑바로 말해 봐. 선생님 말이 사실이야, 아니야? 응? (학생이 아니라고 대답한 듯하다)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학생의 아버지는 조금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대질시켜 잘잘못을 따져야겠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그런 식으로 차별해선 안 됩니다. 나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입니다.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배울 만큼 배웠다’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시시비비를 가려 사과를 꼭 받아야겠다는 학부모의 강한 의지. 배울 만큼 배운 고학력의 소유자이기에 선생에게 질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학부모. 얼마 전 시험 문제를 어렵게 냈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어서 교육청에 직접 전화를 하려다 참고 학교에 전화를 한 것이라며 나를 훈계(?)했던 한 학부모 생각도 났다.
요즘은 참으로 고학력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대학 또는 대학원을 졸업한 학부모들이 많다. 소위 ‘엘리트 학부모’가 많은 시대인 것이다. 엘리트 학부모는 자녀도 엘리트로 키우려고 한다. 과연 어떤 것이 엘리트일까? 공부만 잘하면 이 시대의 엘리트가 되는 것일까?
‘엘리트’라는 말은 ‘선발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엘리트 집단에 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그것이 바로 신분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교육은 신분 상승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통한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을 통해 엘리트로 만들려 한다. 그런데 자리는 한정돼 있고 원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엘리트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엘리트가 되지 못하면 2세 만큼은 엘리트로 만들기 위해 또 교육에 열을 올리게 된다.
예전 학부모와 요즘의 학부모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불현듯 이 엘리트라는 말이 생각났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은 배운 만큼의 사고를 해야 할 것이다. 자녀를 엘리트로 만들려면 부모도 엘리트적 사고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내가 옳다는 생각보다는 좀더 넓게 볼 줄 아는 시각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엘리트란 지위나 학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을 매개로 이루어진 관계다. 학생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엘리트로 키우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엘리트적 사고’를 갖고 협력해야 한다.
김성일/서울 경복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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