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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2 18:06 수정 : 2005.06.12 18:06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준철/울산제일고 1학년

이 책은 소크라테스 하면 생각나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과 제목부터 상반되는 느낌이 강해서 혼란스럽기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하나 둘씩 반박하며 자신이 무죄라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은 무죄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이 무죄임을 이해시키려 한다.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엄밀히 따지고 보면 법 자체가 아니라 자신을 유죄라고 생각하는 아테네 시민들이다. 그가 사형을 선고받고 결과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람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쏟아 붓는 것은 판결을 내린 인물보다는 그 인물들로부터 결정된 법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그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과 그가 법정에서 유죄 선고자에게 비판한 것이 결국은 법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듣고 현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사람들이 현명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며 그들의 미움을 사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에서 소크라테스가 현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가, 깨닫지 못하는가’이다. 그리고 자신은 무지를 깨닫고 있으므로 세상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하다고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변론 곳곳에서 자신이 현명함을 자부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는 모순으로 비쳐진다. ‘무지에 대해 깨닫는가, 깨닫지 못하는가’를 지혜의 척도로 삼고 그 기준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을 설득시키려 하는 소크라테스는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지혜를 판단하며, 그 결과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것일 뿐 결코 현인의 행동은 아니다. 이는 자만이며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순간 ‘자신이 무지에 대해 깨닫는다’가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기준인 ‘무지에 대해 깨닫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다는 것은 자기 성찰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혜에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지혜의 기준을 자신에게 맞춘 것이다. 정치, 글, 기술 등에 대한 지식이 기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찰적 태도에 기준을 맞춘 것이며, 이는 곧 그의 철학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우월하다는 그의 주장은 지식에 대한 자만이 아닌 자신의 사상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말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그는 죽음 앞에서 상반된 행동을 보이고, 자만하는 인물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멜레토스와 아뉴토스처럼 소크라테스를 고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 숨겨진 철학, 사상을 생각한다면 그를 진정한 현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현인이라 생각되는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할 때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그의 오만한 듯한 행동에서 그의 진실된 사상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고전 스스로 읽기 돋보임


고전은 어렵고 딱딱하여 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의 많은 지혜를 고전으로부터 배운다. 이 글은 고전의 내용을 자기 나름으로 정리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것을 쉽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힘이 돋보인다. 그런 힘은 아마도 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글의 내용에 대한 끈질긴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능력이란 때로 어려운 것을 쉽게 표현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고용우/울산제일고 교사, 울산국어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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