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을 통해 배움의 즐거움을 찾고 진로까지 바꾼 서인석, 송성호, 김준혁씨(왼쪽부터)가 자리를 함께했다.
|
[커버스토리]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청소년
인문학 공부 과정 담은 책 출간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 돼
‘배움의 즐거움’도 스스로 찾아
공부나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래방과 피시방을 들락거렸고 학교는 잠자는 곳에 불과했다. 당연히 학교 선생님과도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시름은 깊어졌다. 억지로 학교에 가긴 했지만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대학 진학도 하지 않았다. 최근 <우리는 인문학교다>(학이시습)라는 책을 낸 저자들의 공통점이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서인석, 송성호, 김준혁씨는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청년들이다. 학교에선 ‘문제아’였지만 이젠 2권짜리 두툼한 책을 낸 인문학 저자가 됐다.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이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지난 1년6개월간의 인문학교 수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서인석씨는 틈틈이 써온 시와 에세이를 모아 또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서울 강북구 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기획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말수가 적고 남들 앞에 나서길 꺼리던 김준혁씨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됐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큰 변화예요. ‘나도 공부를 할 수 있고 내 의견을 이렇게 말할 수 있구나’ 알게 된 계기였죠. 학교에 다닐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거든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한 친구의 소개로 5년 전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을 알게 됐다. 학교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문화기획과 책읽기에는 관심이 갔다.
“처음부터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지역 축제를 기획하면서 조금씩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죠. 지역 축제이다 보니 문화와 역사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단순히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우리의 활동과 연결된 공부여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살아있는 공부’라고 할 수 있죠.” 송성호씨는 공부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또다른 공부가 될 수 있었다.
인문학 공부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학교처럼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 수업의 주제는 ‘내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였다. 매주 ‘품’의 심한기 대표와 공부하면서 그때그때 수업의 방향을 세워 나갔다. 주로 책을 정해서 함께 읽어갔지만 공부가 지겨워질 때면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렇게 2009년 2월부터 시작한 인문학교는 2010년 5월에 논문을 쓰고 지난 6월에는 책을 출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최근 이들은 ‘괜찮은 청년문화기획교육집단 세 개(犬)’를 창업했다. 각자가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변화를 다른 청소년들에게도 나눠주기 위해서다. 특히 경제적·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매주 목요일에는 고리울 청소년 문화의집 ‘꾸마’를 찾아 3시간씩 강의를 한다. 토요일은 ‘품’에서 연 ‘무늬만 학교’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로 선택을 하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인문학 공부가 큰 도움이 되죠. 십대들이 사회 안에서 분리되거나 구분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해요. 지금도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이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10대를 보내고 있죠. 이런 아이들과 소통을 해보고 싶어요.”
지난 3월에 출간된 <다른 십대의 탄생>(그린비)은 김해완(18)씨의 치열했던 인문학 공부 기록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니체’에 매력을 느껴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충북 제천에 머물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서울 남산에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찾는다. “대안학교를 다녔지만 ‘대안’을 발견하진 못했죠.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은 여전했거든요. 물론 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복합적이었어요. 자퇴한 뒤에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생활하며 인문학 공부를 했죠. 모르는 게 많았기 때문에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어요.” 최근엔 역사 공부에 빠져 있다. “국사 교과서는 재미가 없었는데, ‘이야기가 있는 역사’는 무척 흥미로운 것 같아요. 인류학을 공부하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사유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게 됐죠. 예전부터 블로그 등에 글을 올리면서 저 자신을 넘어서고 싶었어요. 인문학 책을 읽으며 사유의 힘을 얻게 된 것 같아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니까요.”
|
지난 2009년 부산 인디고서원 옆 뜰에서 열린 ‘정세청세’ 토론 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조별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인디고서원 제공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