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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0 14:53 수정 : 2005.07.13 02:24

"예뻐요" 말뒤에 숨은
"촌스럽잖아요" 속마음

아이들이 조금 크면 옷 사다 주는 일이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옷도 어떻게 입느냐는 문제로 어머니와 아이가 다투는 일이 종종 있다. 고학년쯤 되면 아이들은 유행에 아주 예민해지는데 여자 아이들은 돈을 모아 옷을 사서는 번갈아 돌려입기까지 한다. 체육 시간에 가슴이 깊게 드러나는 옷, 배꼽이 드러나는 옷을 입지 말라고 야단을 했더니 이제는 아예 체육복을 갖고 다니면서 갈아입는다. 그만큼 아이들한테도 머리를 손질하거나 옷을 제 마음에 맞게 입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지난해에는 주말이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부평까지 쇼핑을 다니는 여자 아이들이 있었다. 아직 지연이는 그 정도로 옷에 마음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 얘기를 들어 보니 계절별로 유행하는 옷을 입고 싶단다. 이런 지연이 또래 마음을 어른들이 알 리 없다.

거짓말

여수에 사는

엄마친구가 놀러왔다.


엄마 친구는 우리 집에

일주일동안 계신다.

아줌마가 옷을 사왔다.

검은 바탕에 색색의 꽃무늬가 있는 티셔츠다.

진짜 촌스럽지만 “예뻐요”그랬다.

아줌마는 예쁘다는 말에

“학교에 입구가!”그런다.

나는 깜짝 놀라서

내일 입고 갈 게 있다며

방으로 얼른 들어갔다.

(박지연/인천 남부초등학교 6학년)

오랜만에 친구 집에 놀러온 엄마 친구는 친구 딸내미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한 끝에 옷을 사 왔을 것이다. 옷 집 주인에게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옷을 골라 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 눈에 예쁘게 보인 티셔츠는 안타깝게도 지연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까만 바탕에요, 노랑, 빨강, 연두 이렇게 여러 색깔 꽃무늬가 들어 있어요. 얼마나 촌스러운데요. 시골 같은 데 살아서 그런지 아줌마 옷차림도 좀 촌스러웠어요.”

시를 읽다가 시에 얽힌 일이 궁금해서 지연이를 불렀더니 대뜸 이런 말을 한다. 가만히 보니 지연이는 아줌마를 촌스럽게 여기고 있다. 지연이는 결국 그 옷을 입지 않을 방법으로 얼렁뚱땅 핑계를 대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물론 지연이도 아줌마 마음을 나름대로 생각해서 ‘예뻐요’ 하며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하지만 지연이 마음은 그만큼이다. “학교에 입구가!” 하고 정감 있는 말을 던진 아줌마 말이 더는 지연이 마음에 머물지 못한다.

지난 주에 아이들이 쓴 시 가운데 이 시에 마음이 끌렸다. 그 까닭은 글감 때문이다. 남자 아이고 여자 아이고 손톱, 머리 옷에 퍽이나 신경을 쓰는데도 이런 일을 글감으로 잡아 쓴 시가 드물다 보니 눈에 띄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시에서 지연이가 방에 들어간 뒤 아줌마의 마음을 한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에만 머문 점은 꽤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승숙/인천 남부초등학교 교사 sog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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