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7.10 18:08 수정 : 2005.07.13 02:09

수행평가를 하느라 며칠을 아이들 공책에 파묻혀 지냈다. 공책을 보면 아이들의 면면이 다 보이는 듯싶다. 판서 내용만 베껴 옮기는 정리 방식을 좀 고쳐야 할 것 같아서 학기초 첫 수업 때 아이들에게 그랬다.

“자기만의 창의적인 정리, 메모 기술을 개발해 보자. 배운 것을 제대로 정리하는 능력도 키워야 할 힘 가운데 하나다. 기왕이면 수업 내용만 정리하지 말고, ‘한줄 일기’같은 것도 곁들여 써 보자. 단원 내용과 관련한 정보, 혹은 감동적인 시나 이야기를 모아가며 정리해도 좋겠다. 과정이 생각을 키우는 법이다.”

그런 뒤 두어 달 지나 공책을 걷어 보니 아이들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충실하면 충실한 대로, 어눌하면 어눌한 대로 각자의 특성이며 사고 체계가 고스란히 엿보였다. 한 줄짜리 일기이지만 현재 앓고 있는 성장통의 상흔이 역력하거니와 뜻밖의 면모가 숨어 있기도 했다. 하는 짓이 점잖고 수업 집중력도 높아서 ‘저 녀석 참 근사하다’ 했는데 온갖 짜증과 욕설이 담긴 일기로 도배를 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아, 그때의 배반감이란), 태도는 산만하나 공책 정리 하나는 눈부신 녀석도 있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한두 줄씩 답장을 쓰다가, 결국에는 평가는 뒷전이요, 엉뚱하게 편지 쓰느라 온 시간을 쏟아 붓게 된다. 그럼에도 등급별로 분류하여 도장만 퍽퍽 찍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은, 행간마다 숨어 있는 아이들의 제각각 다른 눈빛과 숨길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못 본 척하고 지나치기에는 애틋하고 각별하며 때로는 아슬아슬하다.

며칠 전에 몇몇 녀석이 둘러서서 뭘 보고 있기에 슬쩍 넘겨다보니 휴대전화 동영상이었다. 저희 반 여학생들이 싸우는 것을 찍은 것인데, 의자까지 집어던지며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장난이 아니었다. 결국에는 “야, 이 녀석들아, 싸움을 말리지는 않고 휴대폰을 찍고 있는 너희들이 더 무섭다” 하면서 군밤을 먹여 보냈는데, 이런 아이들도 공책을 통해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칠 때가 많다.

아이들의 성장 신호는 곳곳에서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속내를 많이 알면 알수록 아이들을 단호하게 ‘처단’하기가 어렵다. 전후 사정을 뻔하게 아는데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아이들에게 너그러워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어느 순간 선생을 ‘밥’으로 여겨 머리 꼭지에서 놀겠다고 덤벼든다. 이런 수순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과 소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관계 단절에서 빚어지는 ‘치명적인 오류’를 줄여 보자는 뜻에서이다. 우리는 드러나는 현상만으로 얼마나 쉽게 아이들을 재단하고 다그치는가?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