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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14 11:38 수정 : 2011.11.14 11:39

<위대한 연설>

안광복 교사의 시사쟁점! 이 한권의 책

53. 위대한 연설 -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난이도 수준 : 고2~고3]

<위대한 연설>
김헌 지음인물과 사상사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셋을 설득의 기본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토스, 즉 성품이다. 말이 좀 어눌하면 어떤가. 사람에게 신뢰가 가면 무슨 말을 하건 믿고 싶어진다. 반면, 사람 됨됨이가 의심스러울 때는 번지르르한 말에도 의심이 갈 테다.

파토스, 즉 감정은 그다음으로 중요하다. 기쁠 때와 슬플 때, 자신의 감정에 따라 똑같은 말도 달리 다가오는 법이다. 훌륭한 연설가는 듣는 이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안다. 때로는 필요한 감정을 부추기기도 한다. 적절히 흥분시키거나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식이다.

로고스, 즉 논리도 놓쳐서는 안 된다. 주장할 때는 ‘팩트'(fact·사실)를 정확하게 내놓아야 한다. 또한, 주장을 앞뒤가 맞게 펼쳐야 한다. 흐릿한 사실과 어물쩍대는 논리로 그럴싸하게 얼버무리려 해서는 안 된다.

맛깔스런 표현과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적절한 동작. 이런 ‘말의 장식’들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갖춘 뒤에야 의미가 있다. 진실된 가치와 감동, 논리가 살아 있는 내용, 여기에 적절한 표현과 매력적인 목소리, 동작이 더해질 때 호소력은 한껏 높아질 테다.

이렇다면 말하는 법은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무엇보다 에토스를 충실하게 다져야 한다. 그런 다음 파토스를 길러야 한다. 로고스 교육은 이 둘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주변의 논술학원들을 둘러보라. 대부분은 이 셋을 거꾸로 가르칠 테다. 학생들은 논리적으로 따지는 법부터 배운다. ‘논리 감각’을 익힌 뒤에는 ‘고급 논술 과정’이 이어진다. 감동적으로 말하고 쓰는 방법을 익힌다는 뜻이다. 파토스, 품성에 대한 교육은? 거의 보지 못했다. 논술을 배워서 인격이 훌륭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이렇게 배운 학생은 ‘입만 까진 아이’가 되기 쉽다. 2500년 전 소피스트들도 다르지 않았나 보다. 소피스트란 논·구술 교사, 프리젠터(presenter), 변호사를 합쳐놓은 듯한 직업이었다. 그들은 말하는 법을 가르쳐서 많은 돈을 벌었다. 다음의 이야기는 파토스 없는 논리 교육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한 젊은이가 소피스트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자신이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도록 가르쳐주면 엄청난 수업료를 내겠다면서 말이다. 소피스트는 반색을 하며 그를 받아들였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젊은이는 재판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수업료를 내려 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소피스트는 제자를 고발했다. 법정에 나란히 선 스승과 제자. 먼저 선생이 주장을 펼친다. 이 재판에서 이기건 지건 젊은이는 수업료를 내야 한다. 내가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받아야 한다. 만약 젊은이가 이겼다면? 그래도 수업료를 내야 한다. 젊은이는 첫 번째 소송에서 이기게 해주면 수업료를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학생의 변론이 뒤를 이었다. 나는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이긴다면 당연히 수업료를 줄 필요가 없다. 재판에서 져도 마찬가지다. 선생에게는 첫 재판에서 이겼을 때만 돈을 주기로 했다. 첫 재판에서 패배했는데, 왜 내가 그에게 수업료를 주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스승과 제자는 똑같은 논리 위에서 정반대 주장을 펼친 셈이다. 이는 소피스트들이 주로 썼던 ‘디소이로고이'(dissoi logoi)라는 기술이다. 이렇듯 인격을 가다듬지 못하는 논리 교육은 사기꾼만 만들어낼 뿐이다.

<위대한 연설>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소피스트 10명을 소개하는 책이다. 지은이 김헌 교수는 앞의 예와는 다른 소피스트들의 모습을 들려준다. 큰 선생은 인품도 훌륭하기 마련이다. 소피스트들도 다르지 않았다. 굵직한 소피스트들은 에토스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았다.

예를 들어보자. 리쿠르고스의 연설 기술은 아주 빼어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다. 조국 아테네를 사랑하는 마음과 정직함은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였단다. 그는 돈을 주무르는 재무장관을 무려 12년 동안이나 했다.

사실, 아테네에서 재무장관은 1년씩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쿠르고스는 편법을 썼다. 1년을 근무한 뒤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올리곤 했다. 일종의 ‘바지 장관(?)’을 쓴 셈이다. 이런데도 아테네 시민들은 너그러이 눈감아 주었다. 리쿠르고스의 깨끗한 돈 관리와 능력을 믿은 덕분이다. 훌륭한 성품은 원칙과 논리마저도 뛰어넘게 한다.

아테네 최고의 연설가로 꼽히는 데모스테네스는 또 어떤가. 그는 리쿠르고스와는 많이 달랐다. 데모스테네스는 돈에 약했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이럼에도 시민들은 데모스테네스를 언제나 환영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아테네를 집어삼키려는 마케도니아에 맞선 ‘독립투사’였다. 조국 독립을 향한 그의 ‘에토스’는 자잘한 잘못을 덮어버렸다.

이제 우리 시대 최고의 프리젠터인 스티브 잡스를 돌아보자. 그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애플의 제품을 직접 프레젠테이션했다. 숱한 최고경영자(CEO)들은 잡스를 흉내 내기에 바쁘다. 최고경영자가 노타이 차림으로 회사 제품을 직접 소개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브 잡스처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들은 우리네 논술학원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지 않을까? 호소력의 뿌리는 논리가 아닌 에토스에 있다. 잡스의 매력은 ‘창조와 개척’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에토스에서 뿜어져 나왔다. 겉모습만 따라 해서는 결코 잡스처럼 되지 못한다.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면 자신의 진정성이, 에토스가 무엇인지부터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그리스 10대 연설가들의 명성은 하나같이 말재주가 아닌, 인간적인 매력에서 나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박사, 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시사브리핑: 스티브 잡스의 죽음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가 지난달 5일(미국시간) 사망했다. 애플은 성명서를 통해 “유감스럽게도 스티브 잡스가 10월5일 타계했다”고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어 “그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혁신의 근원으로 세계는 스티브 잡스 덕분에 진보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그의 죽음 후 한 달여가 흐른 지금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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