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서울의 한 운동장에서 열린 축구대회에서 초등학교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뒤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
|
[학교스포츠긴급점검] 내 아이 운동부 보내기 겁난다
1.누가 이들을 때리는가?
2.우리도 외박 나가고, 휴가 가요.
3.학생인가? 프로선수인가?
4.지도자가 우선 바뀌어야 한다
5.금메달에 희생된 수많은 선수들
6.대학을 바꾸자, 연고대부터 학생 스포츠 선수들이 일상적인 매질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공부는 뒷전이다. 신분은 학생이지만 프로선수처럼 운동만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길 두려워한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운동부에 보내고 싶지만, 운동부에 보낸 뒤 돌아올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돼 어린 선수들에게 야만적인 폭력을 가하고, ‘운동하는 기계’로만 몰아가는 황폐화한 학원스포츠의 위기 상황을 해부하고,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하고 공부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을 모색해본다. 전반전을 0-0으로 끝낸 하프타임 코치는 때리고 욕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단 한마디 단 1초도 전술지시는 없이… ■ 최근 =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의 라커룸. 방금 전반전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돌아온 여자 코치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전반전을 0-0으로 끝낸 선수들이 몹시 못마땅한 모양이다. 코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여자 선수들을 자리에 앉히지도 않고 빙 둘러 세운다. “너 이리 와!”라고 소리치자 지명받은 선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코치에게 다가선다. 매섭게 뺨을 때린다. 잇따라 주변에 있던 3~4명의 얼굴에도 주먹을 날린다. 말도 험악하다. “이 ××야, 이리 와, 내가 무서워? 수비하기도 무섭냐? 왜 못 달라붙는 거야?” 또다른 선수한테는 “너 운동화 끈 풀어. 너 운동하지 마. 네가 잘해서 뛰게 하는 줄 알아”라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쏟아붓는다. 1970년대 국가대표 선수인 최종덕 서산시민구단 감독은 “하프타임은 전반전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자신감과 새로운 힘을 충전시키는 휴식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코치는 때리고 욕하는 데 하프타임의 대부분을 보냈다. “야, 너는 뭐 하는 거야. 골을 넣으라고 주면 골을 넣어야지 왜 못 넣어. 이 ××야.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어”라며 공격수를 몰아세운다. 공포에 질린 학생들은 눈을 내리깔고 단체로 “예”, “아니오”만을 복창할 뿐이다. 외부는 휴식 시간이라 들뜬 분위기였지만, 격리된 세 평짜리 라커룸 안에서는 지옥의 풍경이 펼쳐졌다. 때리는 것도, 욕하는 것도 지쳤나 보다. 코치의 “야, 물 먹어”라는 말에 선수들이 한쪽으로 몰려들더니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후반 시작 1분 전이었다. 10분간의 하프타임 때 단 한마디, 단 1초의 전술 지시는 없었다. 많이 맞은 한 미드필더는 후반 들어 위축된 듯 공을 더 못 찼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연장 무승부 뒤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코치는 “때려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