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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논술학원에서 고등학생들이 ‘논술 실전 문제’를 풀고 있다. 이종찬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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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꾸준한 글쓰기와 독서로 논술 기초체력 키우자
수시비중 높아 논술 중요…관점이 드러나는 글 써야
“논술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다닐까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자칫하면 학원식 글쓰기에 빠져 틀에 박힌 글을 쓰게 된다’며 가지 말래요. 그렇다고 준비 안 하고 마냥 있자니 불안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김아무개(경기 저동고)양은 논술이란 말 자체에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김양은 “꾸준히 책을 읽은 뒤 독후감도 쓰고 있긴 하지만 논술 문제를 풀어보면 출제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고, 지문 해석도 어렵다”며 “글을 써도 어수선해 보이고,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불안한 마음을 털어놨다.
수시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논술의 중요성도 아울러 커지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입학전형위원회는 전국 200개 대학의 ‘2013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심의 의결해 지난해 12월12일 발표했다. 이 시행계획에 따르면 2013학년도 수시모집에선 총 모집인원(37만5695명)의 62.9%인 23만6349명을 선발하고, 정시모집에선 37.1%인 13만9346명을 뽑는다. 2012학년도 수시모집은 2013학년도보다 0.8% 적은 62.1%였다.
수시모집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와 논술, 면접, 적성검사 등이 주요 전형요소로 활용된다. 대학에 따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최저학력기준으로 적용하기도 한다. 최저학력기준만 충족한다면 논술은 당락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로 작용한다. 논술을 20% 이상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학인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를 비롯해 총 32개교다. 논술고사만 잘 준비해도 갈 수 있는 대학은 많다.
그렇지만 김양처럼 논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방향을 잡지 못하는 학생들에겐 논술 반영 학교가 많아질수록 대학문이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것 같아 부담만 커진다. 일부 학교에선 체계적인 논술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교도 많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된 김양은 “이제는 논술을 준비하기에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며 불안해한다. 논술을 언제부터 준비해야 효과적일까? 올해 수시모집에 합격한 강민경(연세대 경영학)씨는 고3이 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논술을 준비했다. 강씨는 “고3이 된 뒤 가고 싶은 대학의 논술 유형을 분석하고 기출문제로 연습했다”며 “논제가 요구하는 조건을 파악한 뒤 형식에 맞춰 쓰는 연습을 꾸준히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3이 된 뒤에 논술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지 않을까? 21년간 국어교사로 재직했고, <너무나도 쉬운 논술>을 쓴 한효석씨는 “대입 논술은 각 대학의 출제 경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춰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고3 때 준비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대학이 원하는 목적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형식에 따라 쓰는 연습만 하면 되기 때문에 고3 때부터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논술 시험에 임박해 고액 과외나 형식적 글쓰기 연습만 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한씨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선 기초체력이 만들어져 있어야 가능하다”며 “평소에 꾸준한 독서와 토론으로 생각을 넓혀놔야지만 고3 때 대학별 시험을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 교사도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학생들은 평소에 규칙적으로 글을 쓰지 않아서 글쓰기 몸이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논술을 어려워한다”며 “글쓰기는 외국어 학습과 같기 때문에 일정 시간을 할애해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강씨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하고, 꾸준히 글을 쓰면서 글쓰기 기초체력을 키운 경우다. 강씨는 “책을 읽으며 논리구조를 익히고 문장력을 키웠다”며 “평소에 시사이슈와 관련해 메모하는 수준이지만 꾸준히 글을 써왔던 것이 축적돼 논술 준비에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고 밝혔다. 강씨보다 더 늦게 논술을 준비해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2011학년도 수시에 합격한 장한나(서울대 인류학과2)씨는 “고3이 되던 해 7월부터 논술을 준비했다”며 “학기 중에는 수능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여름방학에 논술을 시작했고, 추석 연휴 때 집중해서 글을 쓴 뒤, 수능을 보고 나서 약 2주일간 기술을 쌓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준비하는 기간은 짧았지만 장씨 역시 글쓰기 기초 체력은 누구보다 튼튼했다. 장씨는 “신문, 책을 꾸준히 읽어 도움이 많이 됐다”며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 홍세화씨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인문사회 관련 책에 관심이 많아져 꾸준히 읽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또 “어릴 때부터 꾸준히 신문을 읽었다”며 “칼럼을 읽으며 논리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펼치는 방법을 눈여겨본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글쓰기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 잘못 이해돼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 교육이 과열되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 교사는 특히 어릴 때부터 논제 중심으로 논술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태권도를 배울 때 기초 자세인 품새부터 익힌 뒤 겨루기를 해야 실력이 느는 것처럼 평소에 읽기와 토론하기로 생각을 넓힌 뒤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글을 써봐야 한다”며 “어릴 때부터 논제 중심의 입시형 글쓰기에 주력한 학생들은 뻔한 학원식 답안지 작성에만 익숙해져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한다”고 말했다. 2012학년도 수시에 중앙대, 경희대, 건국대, 국민대, 숭실대에 모두 합격한 전희범씨도 글쓰기 자체에 친숙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글을 억지로 쓰려 하면 질려서 흥미를 읽게 된다”며 “평소에 책을 꾸준히 읽고,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토론한 내용을 자연스럽게 글로 옮겨 보는 방법이 좋다”고 주장했다. 틀에 박힌 글이 안 좋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장씨는 “글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며 “글쓰기는 주장을 전달하는 방법이므로 상대방이 받아들일 것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성폭력 사건을 주제로 한다면 피해자 사연, 법원의 부당한 판결, 가해자의 부당한 행동 가운데 어떤 내용에 초점을 맞춰 쓸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목표를 정했다면 개요를 잡고 흐름에 따라 글을 쓰면 된다. 강씨도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강씨는 “예를 들어 기존 문화와 새로운 문화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를 주제로 쓴다면 문화상대주의 등의 뻔한 이야기를 써선 점수를 얻기 어렵다”며 “제시문을 읽다가 오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내용을 포함해 답안을 작성하는 방법처럼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게 써야 한다”고 했다. 정종법 기자 mizzle@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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