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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4 17:36 수정 : 2005.07.24 17:43

전북 진안군 진안공업고등학교 양정양 교사와 학생들이 명상과 체조를 하는 ‘심신 수련’을 하고 있다.   진안공고 심신수련반 제공

마음을 여는 교육 ⑥진안공고 ‘명상수업’


양정양 선생님 교실엔 회초리도 고함소리도 없다
수업시작 3분은 소중한 ‘나’ 를 찾는 시간
“사춘기야 물렀거라 우리는 알토란 여물어 간다”

 “마음 가라앉히세요.” 옆 분단을 기웃거리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아이들이 숨을 멈춘 듯 고요해진다. “이제 정신 통일을 합니다.” 눈을 감는 아이, 먼 곳을 바라보는 아이,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저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교실엔 감히 깰 엄두가 나지 않는 정적이 흐르지만, 무섭고 막막한 정적은 아니다. 편안하고 고요한 기운이 교실 구석구석 퍼지는 듯하다.

전북 진안군 진안읍 진안공업고등학교 양정양(51) 교사의 수업은 이렇게 ‘3분 명상’으로 시작된다. 자기 계발 활동, 특별 활동, 재량 활동 등을 통해 일찌감치 명상을 경험한 아이들은 ‘조용히 하라’는 고함이나 ‘차렷, 경례’ 같은 의례적인 인사가 생략된 양 교사의 수업에 익숙한 듯 보였다. 2학년 유영실(17)양은 “수업 전에 명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집중이 잘 된다”고 했다. 예민하고 예측 불허인 사춘기 청소년들이 ‘명상’이라는, 얼핏 따분하고 지루해 보이는 활동에 어떻게 이처럼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양 교사가 기 체조와 명상으로 구성된 ‘심신 수련’을 시작한 것은 2000년. 건강이 악화돼 ‘자가 치료’를 한 것이 계기였다. 양 교사는 심신 수련을 통해 ‘스스로 귀해지고 남도 귀하게 여기는 삶’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고, 이듬해 진안공고로 부임하면서 이를 아이들과 함께 실천해 보기로 했다. “전자과 교사로 주로 실업계 고교에서 일하다 보니, 특히 남학생을 가르칠 땐 엄하고 무섭게 다그치곤 했습니다. 교사가 매를 들면 잠깐은 효과가 있지만 아이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가 없지요. 오히려 ‘한 번 맞고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요. 교단 생활 20년째인데, 좀 다르게 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들은 양 교사가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체조와 명상을 하자’고 권하자 처음엔 낯설었다고 털어놓았다. “맨날 눈 감으라고 하는데, 졸음만 왔어요. 선생님은 자기 몸에서 빛이 나는 걸 느껴 보라는데 몸에서 어떻게 빛이 나나 싶어 우습기도 했고요.” 학교를 그만뒀다가 복학한 2학년 박진혁(18)군은 지난해 양 교사가 담임을 맡았을 때 수시로 명상을 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언제부터인지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명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2학년 김수영(17)양은 지난해부터 ‘심신 수련’이 1학년 재량 활동으로 채택돼 아예 수업 과목으로 편입된 것이 처음엔 못마땅했다고 했다. “명상이 또 다른 종교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싫었어요. 선생님은 명상을 하면서 ‘내가 하느님이라고 생각하고 참 나를 찾아 보라’고 했거든요. 내가 하느님이라니 말도 안 돼죠.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웠더니, 선생님이 ‘수영이는 명상을 하지 말고 기도를 해라, 명상이나 기도나 똑같다’고 하셨어요.” 김양은 “요즘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때나 잠자기 전, 호흡을 고르면서 명상을 한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 소리만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그만큼 성적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고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꽤 됩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라고 하면 눈을 못 감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애써 잊으려 했던 힘든 생각이 먼저 떠오르니까 그런 거죠. 명상만 하려고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양 교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발견했고, 이 때문에 학교 전체에 ‘명상 문화’를 뿌리내리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양 교사에게 교과 수업을 받거나 담임 반이었던 아이들은 물론, 재량 활동이나 특별 활동으로 ‘심신 수련’을 한 학생들을 두루 꼽으면 현재 진안공고에서 명상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오는 9월 취업과 진학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는 3학년 김재혁(18)군은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심란하다”고 했다. “남이 나를 무시할 때 제일 화가 나는데, 사회에 나가면 그런 일이 더 많을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남이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다고 어른들이 무시하면, 저는 산을 생각하겠어요. 나는 큰 산이다. 아주 크고 넒고 거대한 산이라고 말이죠.” 진안공고 아이들은 저마다 큰 산, 넓은 강, 잘 익은 곡식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명상학급’ 이렇게 꾸렸어요

1. ‘빛나는 나’ 찾기

학급 학생 모두에게 친구의 ‘빛나는 부분’이 무엇인지 쓰게 한 뒤 이를 토대로 각자의 모습을 정리해 학급 게시판 ‘빛나는 나’ 코너에다 붙여놓았다. “선아야, 우리는 너에게서 세상에서 제일 높이 나는 독수리의 힘찬 날개를 느낀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 힘찬 날갯짓을 하는 강렬한 힘을 준다. 고마워! 나는 언젠가 세상에서 제일 가는 기술자가 되겠어.” 수업 시간이나 특별 활동 시간 등을 활용해 명상을 할 때, 각자 자신의 ‘빛나는 나’를 떠올리도록 독려했다.

2. ‘내일을 향해 품은 나의 마음’ 발표하기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에 익숙해지면, 자신에게 적합한 좌우명을 만들어 다른 아이들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도 성공할 수 있어!” 등 짧지만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내고 마음속에서 우러난 말들을 좌우명으로 삼게 했다. 처음엔 추상적인 내용을 내놓고 쑥스러워했던 아이들은 자신의 좌우명을 조금씩 수정하며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3. 너와 내가 더불어 살기 위한 결의서인 ‘우리는’ 만들기

 “나와 너의 빛나는 모습만을 생각합니다.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그 안에 감추어진 빛나는 모습을 자꾸 상상해 주겠습니다. 모두가 내 품 안에서 찬란하게 거듭나고 서로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나는 뭇 생명, 뭇 사람, 모든 사물과 함게 행복해지는 모습을 실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이런 내용의 결의서를 아이들 각자 책상에 붙여놓은 뒤, 조회와 종례를 ‘우리는’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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