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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31 16:06 수정 : 2005.07.31 16:10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지난해 겨울에 2학년 수행평가를 겸해서 소설을 한 편씩 쓰도록 한 적이 있다. 과제를 내면서 솔직히 속으로는 ‘열다섯 살 짜리들이 쓰면 얼마나 쓰겠나’ 싶었다. 그래도 동기 부여는 필요할 것 같아서 좋은 작품이 많으면 정식 소설책으로 출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중에 걷어 보니 뜻밖에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소재로 다루어서 그런지 현실감이 살아 있었다. 특히 가족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은 눈에 잡힐 듯 생생하였다.

 그러나 작품만 선별했을 뿐, 여러 바쁜 일이 겹쳐 추가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학기가 다 지난 시점인 여름 방학 이틀 전에야 소설창작팀 모임을 열었다. 3학년이 된 아이들은 자기들의 글이 진짜 소설책으로 엮인다는 사실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난 번 작품을 손보아도 되고, 새롭게 써도 좋다.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너희의 생활과 생각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냈으면 좋겠다. 열다섯 살의 희망과 고통, 그 진면목을 세상에 알리는 출발이다. 1차 마감은 7월 말, 방학 때 땀 좀 흘려 보자.”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다음 모임 날짜를 잡은 뒤 헤어졌다. 아이들은 지금쯤 밤잠을 줄여 가며 ‘창작의 고통’을 만끽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그나마 중학교가 입시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과 지내 보면 평소엔 정말 재기발랄하며, 상상력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시험과 연동되는 순간부터는 마치 코드 빠진 전구처럼 그 어떤 것에도 점화되지 않는다.

1980년대까지 서울에서도 선발연합고사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는 3학년이 되면 시험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 드는 토론 수업은 물론이고, 학급 문집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말 그대로 공부는 죽어라 했지만, 그때 수준이 지금보다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즘 들어 학력이 낮아지고 있다며 평준화의 틀을 깨려는 공공연한 움직임이 부산스럽다. 얼마 전에 서울대 총장의 ‘원자재가 좋아야 좋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교육은 결국 솎아내는 일이 아니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전해 들으면서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솎아낸단 말인가. 과연 교육이 오로지 ‘좋은 상품’을 만드는 일이란 말인가.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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