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7 18:02
수정 : 2005.08.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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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다산과학기지가 있는 니알슨 기지촌을 멀리서 내려다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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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다산과학기지 극지체험단으로 뽑혀 현지를 방문한 중·고생들이 체험활동기를 전자우편으로 <한겨레>에 보내왔다. 이번 체험 프로그램은 한국과학문화재단,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월간 <과학소년>이 공동 주최했으며, 학생 체험단을 동행 취재한 <과학소년> 취재진이 기사와 사진을 보내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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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년전 빙하의 물맛 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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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년전 빙하의 물맛 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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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영국 런던, 노르웨이 오슬로·트롬소·롱이어비엔을 거쳐 북위 78° 33′에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북극연구소인 다산과학기지에 도착했다. 경비행기를 타고 기지촌이 보이는 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높은 산들이 주위의 경관과 어우러져 대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크레바스에 빠질라” 조심조심 한줄로
가장 재미있고 또 가장 힘들었던 ‘빙하 탐사’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서 생각할수록 나를 들뜨게 만든다. 8월2일 점심을 먹고 난 뒤 우리는 짐을 챙겨서 다산기지 뒤쪽에 있는 빙하로 향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빙하는 걸어서 5분이면 닿을 것 같았는데 무려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북극은 공기가 너무 맑아서 먼 곳의 물체가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박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울퉁불퉁한 바위산을 지나 빙하를 타고 올라갔다. 빙하에는 크레바스라는 깊은 틈이 있어서 무척 위험하기 때문에 박사님 뒤를 일렬로 줄을 서서 조심조심 따라갔다. 빙하의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베이스캠프를 쳤다. 박사님께서 빙하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 보라고 하셨다. 엎드려서 물을 마셨다. 물이 너무나 시원했다. 여느 생수와도 약간 맛이 다른 것 같았다. 수 만 년 전의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어 얼음을 시추하는 아이스 코어(Ice Core)라는 장비로 얼음을 둥글고 긴 원기둥 모양으로 시추하기 시작했다. 빙하의 중간 얼음이라 그런지 푸석푸석해서 계속 부러져서 결국 부러진 것을 가져가기로 했다. 얼음 속의 미생물도 채집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기로 했다. 무려 5시간이나 걸렸던 빙하 탐사는 나에게 그 곳이 진짜 북극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었고 빙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설레임을 만족시켜 주었다. 앞으로 빙하를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빙하를 많이 먹고 사진도 많이 찍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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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에 사는 박테리아를 채취하려고 빙하에 구멍을 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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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장 멋지고 환상적이었던 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빙하와 유빙, 새들을 관찰했던 활동이었다. 8월3일 점심을 먹고 부둣가에서 보트를 운전할 노르웨이 기사분과 폴란드 기사분을 만나 구명조끼를 입고서 출발했다. 그저 육지에서 망원경으로만 보았던 유빙과 빙하를 가까이서 보니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웠다. 정말 말이 안 나왔다. 유빙은 정말 깎은 것처럼 생겼다. 유빙은 큰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덩어리가 바다에 떠 있는 것인데, 약 10% 가량만 수면 위로 보이고 나머지 90%는 밑에 있다. 그래서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나왔다. 가장 깨끗한 빙하는 조금 파란색을 띤다고 박사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본 빙하는 15년 전쯤에는 1000m 가량 앞에 있었는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자꾸 뒤로 후퇴하고 있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었다. 북극과 남극 두 극지는 오염되면 다른 지역보다 회복 속도가 느려서 오염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남극과 북극의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란다.
씁쓸함을 뒤로한 채 새들의 서식지로 이동했다.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높은 절벽에 새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는 그 장면.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장면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다. 이 엄청난 자연의 위대함 속에 무슨 할말이 있으리? 너무나 인상적인 장면에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새떼들, 떠다니는 유빙, 거대한 빙하….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대자연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오늘의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지구온난화 탓 빙하 뒤로 밀려나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다. 이런 곳에 다녀올 기회를 잡은 나 자신도 자랑스러웠다. 북극에 가기 전에는 북극에 대해 별로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춥고 썰렁하고, 얼음으로 뒤덮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실제로 북극에 가 보니 달라졌다. 북극은 단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으로 멍청하게 느껴졌다. 북극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하지도 않다.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실제로 보고 느끼지 않고서는 절대로 결론을 내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극은 우리의 생활에, 또 지구의 온도 변화나 환경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북극은 앞으로 우리가 계속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의 땅일지도 모른다. 극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늘어날 것이고 극지의 많은 부분이 개발되고 보호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산을 투자해 극지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앞으로는 극지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이 더 편해질 것 같다. 시설도 더 좋아진다면 더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북극 연구의 미래가 밝다는 점에서,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내가 극지 연구자가 될지, 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난 나의 길을 만들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하며 순간순간에 충실할 것이다. 어느 순간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장애물을 꿋꿋이 이겨내고 넘어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물론 그 도착지가 극지 연구가였으면 좋겠지만….
8박 9일의 일정이 끝나간다. 이제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북극에서 얻은 자신감과 도전 정신은 나를 여기서 멈추게 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더욱 나에게 맡겨진 모든 일에 충실해서, 어떤 삶을 살든 이번의 경험이 내 삶에 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함께 체험단으로 활동한 준기 형, 현정이 누나, 진아 누나, 길정이 모두 10년 뒤에 극지에서 만나기를….
김봄/진주 진주동중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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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땅 곳곳 숨은 생명들이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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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에 사는 박테리아를 채취하려고 빙하에 구멍을 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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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 오후 5시30분. 다산 기지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이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항상 사진을 보면서 ‘내가 극지 연구원이 되어서 꼭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그 기회가 찾아왔다. 다산 기지는 노르웨이의 ‘킹스베이’라는 회사가 관리해서 그런지 식당, 체육관, 샤워실 등이 잘 갖춰져 있었다. 첫날은 그 동안의 여행으로 피곤이 몰려왔지만 흥분과 기대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빙하속 기포는 과거보는 타임머신
둘쨋날 오후 빙하 채집을 하러 차에 올랐다. 추위와 햇볕을 막기 위해 선글라스와 모자, 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했다.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툰드라 지역을 지나 돌길이 나왔다. 크고 작은 돌들이 넓게 퍼져 있고 그 사이로 빙하가 녹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돌길을 지나니 빙하가 나왔다. 사고에 대비해 일렬로 줄지어 빙하를 올라갔다. 생각보다 가파라서 힘들긴 했지만, 얼음 사이를 흐르는 물을 마시니 힘들다는 생각은 사라져 버리고,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시원한 물맛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 것 같았다.
빙하 채집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이스 코어라는 긴 플라스틱 원통을 바닥에 수직으로 세운 뒤 누르면서 돌리면 빙하가 원통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빙하의 기포를 분석하면 몇 만 년 전의 공기까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니, 빙하 속의 작은 기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는 타임머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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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주변에 사는 이끼와 현화식물, 지의류를 채집해 와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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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 속의 크로렐라 같은 남조류도 관찰할 수 있었다. 꼭 흙처럼 생겼다. 광합성을 해서 살아가기 때문에남조류가 있는 부분만 얼음이 녹아 있었다. 이 남조류와 채집한 빙하를 들고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몇 배나 더 힘이 들었다. 다리도 아프고, 팔도 끊어지는 것 같았다. 강한 바람과 빙하에 반사되는 햇빛이 더 힘들게 했다. 녹초가 돼 기지에 돌아와 잠에 곯아떨어졌다. 극지 과학자가 되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지만, 체력도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하루였다.
셋째날 중국 기지 ‘옐로 리버’를 방문했다. 빙하와 오로라 관측 등 기상 대기 관측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한다고 했다. 처음엔 중국 기지를 얕잡아 보았는데 연구 시설이나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좋았다. 우리 기지는 건물의 반쪽만 쓰고 있는데 앞으로 재정 지원이 확대돼 우리 연구 시설도 좀더 편리하고 커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지 과학자 꿈 새록새록
오후 플랑크톤을 채집하러 바다로 나갔다. 구명조끼가 너무 크고 무거웠지만, 주변에 펼쳐진 빙하나 산맥들을 보는 순간 무거운 옷은 까맣게 잊었다. 바다에서 둘러본 북극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지만,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북극의 모습들을 머릿속에 꼭꼭 눌러 담고 싶었다. 빙하 가까이 가니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동물성 플랑크톤과 아주 작은 해파리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저녁 때 기지에서 채집한 식물들과 플랑크톤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현미경으로 보는 생물들의 모습에서 광활한 산맥, 빙산과는 또 다른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북극에 왔을 때의 설렘과 환희를 앞으로 잊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으로서 북극에 와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고 기회이다. 북극에서 보고 들은 많은 것들은 앞으로 극지 과학자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닥치는 고난이나 시련들을 이겨내는 데 많은 힘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극지 연구원이 되어 우리나라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배현정/충북사대부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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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가 무너지고 있는 현장에 보트를 타고 가서 유빙을 관찰했다. 이곳에서는 빙하가 붕괴될 때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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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학기지는 어떤곳
노르웨이에 위치
비행기만 5차례 갈아타야
북극 다산과학기지는 2002년 4월29일, 남극을 연구하는 세종과학기지와 함께 북극의 환경과 자원을 연구하기 위해 노르웨이의 스발바드 군도 스피츠베르겐섬의 니알슨에 세워졌다. 원래 탄광촌이었던 곳을 노르웨이의 킹스베이라는 회사가 연구 기지로 운영하는데, 우리나라와 노르웨이·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중국·일본 등 8개국의 기지가 들어서 있다. 북위 78° 33´나 되는 극지임에도 연구 시설이나 공항·부두·실내체육관·서비스 센터·슈퍼마켓·카페·호텔·유류 및 가스 저장고·저수지 및 송수관 등 기반 시설과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시설 관리를 위한 상주 인원은 없고, 필요한 때에 연구원이 기지에 머물며 연구한다. 생물·지질 분야는 주로 여름에 이뤄지지만, 대기 관측이나 해양학 등 대부분의 연구는 계절에 상관없이 꾸준히 이뤄진다.
지난 7월30일 오후 1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극지 체험단원들은 영국 런던과 노르웨이의 오슬로·트롬소·롱이어비엔을 거쳐 비행기를 무려 5차례나 타고서야 북극 다산과학기지에 닿을 수 있었다. 도착한 시각은 8월1일 오후 4시(한국시각 8월1일 밤 11시). 이틀이 훨씬 넘게 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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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북극 다산과학기지 극지체험단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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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체험단원 5명은 사흘 동안 빙하 체험, 해양생물 관찰, 해양 플랑크톤 관찰, 극지 식물 관찰 등을 하며 북극 연구 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린 물이 계곡을 이룬 모습에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 큰 수확이었다. 최초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이번 북극 탐사 활동이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극지를 이해하는 알찬 씨앗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김현숙 <과학소년> 기자, 사진 이창훈 <과학소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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