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7 18:42
수정 : 2005.08.07 19:00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방학할 때가 되면 아이들 성적과 관련된 이런 저런 문서를 많이 작성하게 된다. 성적일람표, 수행평가기록부, 생활통지표 같은 것들이다. 이제는 문서들을 손글씨 없이 모두 컴퓨터를 통해 출력하게 되었다. 편리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출력하는 종이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A4 용지로 열몇 장씩 뽑아서 제출했는데, 겉장에 결재란이 있는데도 과목별 결재란을 따로 만들어 결재하는 것으로 전체가 통일했으니 새로 뽑아야 한단다. 전체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뽑았다. 이미 출력한 종이가 참 아깝다. 프린터로 뽑기 전에 알려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종이는 그렇게 낭비된다. 아무도 종이가 아깝다 말하지 않는다. 불만이 있지만, 새로 뽑고 어쩌고 하는 일을 다시 하는 것만 짜증을 낼 뿐이다. 그렇게 새로 뽑은 것도 결재 과정에서 종이 낭비는 반복된다. 별로 수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고치라 하면 결재자가 원하는 대로 수정해서 다시 뽑아야 한다. 그렇게 결재자도 교사들도 ‘잘못되면 다시 뽑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 어느 새 자리잡혀 있다. 예전에 손글씨로 쓰고 결재 맡을 때는 없던 일이다. 물론 나도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뿐이다.
사정이 그러니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종이 낭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서로 쪽지를 교환할 때도 멀쩡한 공책을 찢어 쓰다가 금방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새로 찢는다. 자투리 종이를 이용해도 되는데 멀쩡한 것을 예사로 찢는다. 아침에 비웠는데도 분리배출함을 보면 그렇게 버려진 종이들이 다시 쌓여 있다. 일기장만 봐도 그렇다. 한 쪽에 몇 줄 안 썼는데도 그 다음날은 다음 쪽에 쓴다. 불러서 말해 보고, 그게 잘 안 먹힐 때는 그 빈 공간에 색연필로 테두리를 그리고 예쁜 그림과 함께 ‘종이는 나무입니다. 나무는 공기입니다. 공책을 아끼는 영희가 됩시다’라고 글을 남긴다. 그래도 그때뿐이다. 다른 교사들은 그저 아이들이 종이를 분리배출함에만 버려 줘도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 버리는 건 별로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너무나 풍요롭다. 이렇게 소비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나는 이렇게 낭비하게 만드는 잘 사는(?) 우리나라가 두렵다. 컴퓨터를 통해서 편하게 빨리 빨리 돌아가는 시스템이 두렵다. 제 속도로 해야 꼼꼼하고 바르게 일 처리를 할 수 있을텐데, 학교는 어찌나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실수는 잦고, 종이는 낭비가 심하다. 그렇다 한들 원망만 할 수는 없겠지. 제자리에서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일단 2학기에는 종이가 낭비되지 않도록 교사들부터 노력해 보는 게 어떨까.
김권호/서울 일신초등학교 교사
kimbechu@hanmail.net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