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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전국 청소년 논술토론 한마당의 마지막날인 지난 7월24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자유토론에 참가한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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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논술토론 한마당을 가다
“천성산에 터널을 뚫으면 22분이 단축됩니다. 한 사람 앞에 22분씩, 이용자 모두의 시간이 절약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비용으로 따지면 엄청난데, 환경 그 자체만을 위해 모든 개발을 ‘악’으로 돌릴 수 있습니까?”(민족사관고 1년 반창현군) “인간은 자신의 편리를 위해 이미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22분을 단축해서 얻는 이익과 터널을 뚫지 않고 습지를 보존해 얻는 이익, 궁극적으로 어느 것이 더 큰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부산 만덕고 3년 김성현양) 토론 참가자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보던 학생들도 한마디씩 보탤 태세로 귀를 기울였다. 지난달 24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제6회 전국 청소년 논술토론 한마당’의 자유토론 현장. 전날 있었던 모둠 토론과 구술 면접을 거쳐 뽑힌 8명이 최종 토론을 벌이는 참이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개발 우선론’과 ‘환경 우선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개발이냐 환경이냐 의견 팽팽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한겨레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이번 대회는 지난 5월 전국 고교생과 만 20살 이하의 중졸 이상 청소년(재수생·탈학교 학생) 200여명에게서 논문을 받아 이 가운데서 64명을 선발한 뒤 2박3일 동안 본선을 치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대회 첫날 경남 양산의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현장에 찾아가 지율 스님과 공사 관계자들의 상반된 의견을 듣는 ‘체험학습’을 했다. 현장에서 느낀 점이 워낙 많았던 탓일까. 토론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원론에 가까운 주장이 되풀이됐다. “청소년들의 토론인 만큼 무슨 ‘론’을 주장하기보다는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으면 했는데, 그렇게 되질 않았어요.” 본선 토론자였던 오환철(18·광명북고 3년)군이 아쉬운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지난해 토론자로 참여했다가 올해엔 대회 자원봉사자로 뛴 최아름(18·사직여고 3년)양은 “객석에서 지켜보는 동안 가슴이 답답해서 혼났다”며 “내가 토론자여도 쉽지는 않았겠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자랑할 게 아니라 자기의 진심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로 3년째 대회에 참가한다는 김성현양은 “해마다 행사가 끝난 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반성하게 된다”며 “그게 대회에 참가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스스로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최근 불어닥친 독서·논술 열풍이 올해 대회에 영향을 끼쳤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과 부산은 물론 충청과 강원 등 그동안 참여가 적었던 지역 학생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행사 끝난 뒤 부족함 깨달아” 이번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은 부산 한국해양대 김태만 교수(동아시아학과)는 “각종 대회에 참여해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는 것도 학습에 자극이 될 수 있지만, 말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논문 심사와 토론 심사를 고루 해 보았는데, 평소 독서량과 이를 토대로 생각하는 힘을 얼마나 길렀는지가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지방 학생들 참여 부쩍 늘어 1999년 열린 1회 대회부터 행사 준비에 참여해 온 부산 사직여고 양윤복 교사도 “수상을 위해 교사가 미리 연습을 시키는 걸 보았는데 크게 도움이 안 되더라”고 귀띔했다. 2박3일 동안 모둠 토론과 개별 구술면접, 최종 토론까지 10시간 넘게 토론에 참여하는데, 미리 ‘모범 답안’을 준비하는 건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최종 자유토론 사회자를 맡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프랑스에서는 독서와 토론, 논문 작성이 모든 수업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며 “비판적으로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을 기르는 건 참으로 중요하지만 결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입시 방식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과 과정이나 수업 방식을 바꿔야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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