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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국가정보원장 등이 8월5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옛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 대국민 사과 및 중간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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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구술-시사 따라잡기
인권 측면서 보면
테이프 내용 적법성 떠나 불법도청 명백한 인권침해
정경유착 측면서 보면
초일류기업의 ‘검은 거래’ 공정한 ‘게임 룰’ 반칙행위
국가권력 남용 측면서 보면
‘빅 브라더’ 유혹빠진 국가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나
1. 시사 관련 논제들
시사 관련 문제들은 구술·면접 고사에서 자주 출제되고 있으니,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항상 시사 관련 소식에 관심을 많이 갖고 생각도 많이 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문이나 시사 관련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시사 토론 프로그램 등을 자주 보며, 주변 사람들과 시사 문제로 자주 대화를 나누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원론적인 문제로 논술을 하더라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사적인 사건을 거론해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예를 들어 2004학년도 서강대 정시 논술고사 논제인 ‘표현의 자유와 책임’의 경우, 매우 원론적이긴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거나 언론에 의해 초상권 침해를 받은 사례 등 매우 시사적인 사건들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논술을 준비하는 모든 수험생들은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어떤 신문을 봐야 하느냐고 묻는 때가 많다. 특히 사설을 많이 읽으면 논술을 잘할 수 있느냐고도 자주 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신문 사설은 논리적인 글이기는 하지만, 비유적 표현이 남발되고 논리보다는 감정적 표현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신문은 각종 보도 기사를 보기 위해 보는 것이다. 스포츠면이나 연예면을 포함해 모든 기사가 다 볼 가치가 있다.
최근에 문제되는 시사적 사건들을 살펴보면, △서울대 2008학년도 입시안 △논술 열풍 △인터넷 실명제 논란 △생방송 중 전라 노출 소동 △황우석 교수의 생명공학 혁명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도청 엑스(X) 파일 파문 등이 가장 주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논·구술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이런 문제들의 사실 여부를 자세히 알아 두고, 그에 관한 자신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두는 것이 좋다.
여기서는 최근 국가적으로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옛 안기부 엑스(X) 파일 파문’에 관해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몇 가지 문제점을 중심으로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자.
2. 이슈의 발단
문제의 발단은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오랫동안 추적 취재한 끝에 재벌과 권력, 언론의 유착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도청 테이프를 입수하여 방송하고자 하였으나, 문화방송 보도국 편집 회의에서 ‘보도 불가’ 판정을 받고 수많은 의혹만 증폭시켰다가 한 일간신문이 그 사건의 거의 전모를 특종 보도하여 사건의 진위가 세간에 밝혀지면서부터였다.
95분 분량의 이 테이프에는 1997년 대선 당시 국내 거대 재벌 그룹의 고위 임원과 거대 중앙 일간지 사주가 만나 특정 후보에게 불법적으로 대선 자금을 지원하기로 공모한 대화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 테이프로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은 안기부(지금의 국가정보원)의 비밀 조직인 ‘미림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림팀은 안기부 안에 1991년 7월 새로 편성하여 활동하다가 93년 7월 해체되었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선 94년 6월부터 97년 11월까지 재구성되어 활동하면서 정계·관계·재계·언론계 인사들에 대한 도청 임무를 주로 수행해 왔다. 미림팀은 도청을 통해 녹음 테이프를 만들어 보관해 왔고, 중요한 정보는 담당 국장 및 안기부장을 비롯한 수뇌부에게만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 미림팀의 활동은 안기부 내에서도 기밀사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림팀이 해체되고 김대중 정부 들어 관련자들이 직권 면직된 뒤, 불법 도청된 테이프를 빼돌려 기업에 사업 지원을 받아내자는 속셈으로 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도청의 문제
우선 이 문제를 사생활 보호, 또는 인권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세계 인권 선언 제12조에는 다음과 같이 개인의 사생활과 통신에 관한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제12조: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사사(私事)·가족·가정 혹은 통신에 대하여 불법한 간섭을 받지 아니하여야 하며 그 명예와 신망에 대한 침해를 받아서는 아니된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간섭이나 침해에 대하여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다음과 같이 그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특히 1992년 ‘초원복집 도청 사건’의 피해자임을 자처하던 문민정부는 불법 도청을 금지하기 위하여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그런 문민정부 시절에 이런 불법 도청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명백한 인권침해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 테이프가 담고 있는 내용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박탈당했다면 이것은 법치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도청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과거 안기부는 도청을 끝까지 부인해 왔다. 결국 이 사건은 국가 권력기관이 범죄 사실을 적발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매우 안이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인권 후진국임을 반증하는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수배 중인 범법자를 체포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가 기관이 도청을 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도 허용하는 바이다. 이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명백한 범죄 수사를 위한 최소한의 경우에만 도·감청이 허용되어야 한다.
한편, 엑스(X) 파일이 기자가 입수한 보도 자료라는 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매우 큰 특종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자신들도 그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 왔음을 밝히고 나섰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의 알 권리와 국민의 인권 침해 문제에서 우리가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는 당연히 인권 문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여론에 밀려 법의 원칙이 훼손된다면 앞으로 생길 많은 사회적 혼란을 법이 지켜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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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최민희 사무총장이 7월27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과 홍석현씨의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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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문제를 정경유착의 차원에서 검토해 보기로 하자.
정경유착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아닌 문민정부 시절에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충격을 더해 준다. 만약 모든 문제를 사생활 침해, 또는 인권 문제라 해서 그것이 범죄 행위임을 알면서도 묵인한다면 사회의 정의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불법 도청 사건의 내막에는 정경유착이라는 뿌리 깊은 부정, 비리가 감춰져 있는데도, 국가 기관의 도청 행위에 대한 위법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기업과 권력, 그리고 언론의 유착 문제는 슬그머니 사라져 가는 상황을 지켜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경유착의 폐단은 무엇인지 더 생각해 보자. 우선 정경유착이라는 사회적 풍토에서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모든 게임은 공정해야 하는데, 게임이 불공정하여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진행된다면 그 게임은 처음부터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게임의 승자를 정해 놓고 벌이는 게임이란 의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특정 기업이나 기업인에게 특혜가 주어져 공정한 경제활동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기업이 자본을 투자하려 하겠는가? 그런 사회의 문화나 풍토에서 기업들은 기술 개발보다는 정치 권력에 더 많은 자금을 쓰게 될 것이고 결국 국가 경제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기업의 투명성을 감시해야 할 국가 기관이 눈감아 줌으로써 기업 경영의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경영의 낙후성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하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국민들이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상실감은 다른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 엑스 파일에 담긴 목소리의 주인공들의 인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오고간 ‘가진 자들의 잔치’에 환멸을 느끼고, 또 사법처리 시효가 만료되어 처벌할 수 없다는 ‘가진 자’에 대한 법의 융통성이나 관용에 또 한 번 절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초일류 기업이 관련되었다는 점에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으며, 비단 한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그들이 거래한 ‘검은돈’의 규모에 큰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이 아직도 구시대의 산물인 정경유착을 통한 특혜를 입어 성장하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서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을 인정하더라도,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이 시기에 낡은 기업 경영 방식은 이제 휴지통에 버려야 할 것이다.
5. 국가의 권력 남용
이 문제는 국가라는 거대 권력 기관의 권력 남용 문제로 접근해 볼 수도 있다.
영화 <트루먼 쇼>(1998)에서는 하루 24시간 동안 생방송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인 트루먼(짐 캐리 분)이 등장한다. 전세계 시청자들이 탄생에서 지금까지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다. 그의 주변 인물은 모두 배우이고, 그가 사는 곳도 스튜디오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미래 사회의 개인들 역시 트루먼처럼 누군가에게 늘 감시받는 생활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조지 오웰(1903~50)의 미래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는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이용한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수행해 어떠한 소리나 동작도 낱낱이 포착할 수 있다. 사상 경찰은 텔레스크린으로 개개인을 감시하며, 사람들은 그러한 삶에 익숙해진다.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 역시 하루 종일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한다. 이런 상황은 조지 오웰이 작품을 썼을 당시에는 단지 미래에 대한 암울한 공상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리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설치하고, 통신을 도청·감청하여 개개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감시할 수 있게 되어 영화나 소설 같은 일이 ‘실제 상황’이 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누군가가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전자매체에 기록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있을까?
김승규 국정원장이 8월5일 ‘과거사 고백’을 한 것을 보면 과거에 국정원이 호텔·음식점·룸살롱 등의 장소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거나, 유선 도청은 물론이고 휴대전화 도청까지 해 왔다고 한다. 이제 생활필수품이 된 휴대전화의 보급률을 생각할 때, 이 문제가 국가적으로 끼칠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국가 권력의 남용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국민들의 행복을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국가 권력에 부여된 신성한 의무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자신도 “법무장관 때 도청당하는 게 아니냐고 불안”했다면서 그래서 휴대전화를 바꿔 사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과거의 불법 감청에 대하여 용서를 구합니다”라면서 “불법 감청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3월 이후 완전히 근절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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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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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영/서울 성남고 교사, 강호영의 논술교실(my.dreamwiz.com/ghdud99)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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