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 성적을 위해 친구와의 우정을 버리라’고 권하는 내용의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2013년 캠페인’ 광고를 비틀어 ‘성적이 너의 우정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교육운동단체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패러디 광고.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제공
|
박재원의 공감학습
자식을 자랑거리로 삼기 전에 ‘자신이 자랑거리’가 되는 부모가 돼야
아이에 대한 믿음은 장기전…주변 부추김에 흔들리지 않으면 효과 봐
#1 “빨리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니까.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그러다가 정말 아이 심각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약 먹인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거든. 다들 멀쩡하게 치료가 돼서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더 잘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2 “제발 옛날 이야기 좀 그만해. 학교 공부만 하는 애들이 어디 있어! 한 반에 아마 한두 명도 안 될걸. 선생님들이 그런 애들 얼마나 싫어하는 줄 알아? 숲 유치원 보내고 공부는 나중에 시킨다는 부모들이 결국 더 심하게 애들 학원 뺑뺑이 돌리더라. 애 기죽고 나서 공부 포기하기 전에 정신차리라고!”
최근에 접한 부모들의 이야기이다.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해설이 필요할 듯하다.
#1 매우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아이를 부모가 시키는 대로 차분하게 앉아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신과 병원에 데려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부모가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입증받기 위해 주변에 비슷한 아이를 둔 부모들을 선동하는 장면이다.
#2 맹목적인 경쟁의식에 매몰된 부모가, 그래서 아이에게 영어유치원부터 스토리텔링 수학까지, 조기교육에 선행학습까지 강요한 부모가 아이를 믿고 소신껏 부모 역할을 하는 이들을 심리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이다.
정말 안타깝지만 정상적인 부모들이 비정상적인 부모들에게 몹시 시달리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순진한 부모들이 극성스런 부모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다.
얻고 또 잃는 것
사교육은 부모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신경안정제’라는 말이 있다. 약물은 즉각적인 효과가 장점이지만 심각한 후유증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사교육 효과를 칭송하는 부모들이 목소리를 키운다. 혼자서 시험공부를 하려면 핵심을 찾아야 하고 출제의도에 맞게 응용하는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학원에 보내지 않은 부모들이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에게 기가 죽는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전세가 역전된다. 핵심 요약과 응용력을 연습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진도가 천천히 나가는 학교 수업에 맞춰 공부하면 실력 향상도 당연히 느리게 나타난다. 학교 밖에서 사교육을 통해 속도전으로 공부하는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뒤질 수 있다. 학교를 신뢰하는 부모들이 불신하는 부모들의 등쌀에 견디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전세가 역전된다. 하나하나 돌을 제대로 깎아 튼실하게 쌓은 피라미드가 쉽고 빠르게 쌓아 올린 모래성보다 높이 올라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집에 혼자 있으면 온갖 유혹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학원에 보내면 부모들은 일단 안심할 수 있다.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을 둘러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더 편안해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하는 부모들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훈수를 둘 만하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전세가 역전된다. 타율적인 관리를 받은 학생이 대부분 거부감에 시달리는 데 반해 스스로 노력하여 성취한 경험은 자존감은 물론 계속 성취욕구를 자극해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자가 될 가능성을 크게 높이기 때문이다.
분명 현실은 사교육에 의존적인 부모가 그렇지 않은 부모보다 우월해 보인다. 당장 사교육을 통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생기는 법. 문제는 지금 당장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부모들의 공세가 워낙 거세 장기전을 준비하는 부모들이 혼란에 빠져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교육을 동원한 단기전보다는 스스로 노력하는 장기전의 승률이 월등히 높은 게 사실이지만 모두 단기전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전의 승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단기전의 후유증으로 인해 중간 포기자가 속출하지만 역시 그 자리를 단기전의 계속 승자가 채우기 때문에 단기전만이 필승전략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반면 장기전을 선택한 경우 대부분 종반전에 돌입해야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필패전략으로 여겨진다.
희망을 잃어가는 그러나 키워가는
불안감보다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한 부모들이 위기에 빠져 있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부모들이 지금 당장 성적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공세를 펴기 때문이다. 우리 애는 위너가 될 것이고 당신 아이는 루저가 될 것이라고.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보다는 아이의 의욕과 자발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정보를 수집하고 돈을 투자해 아이의 성적을 끌어올린 부모들에게 상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욕심보다는 아이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갈등하고 있다. 학벌사회로 향하는 성공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오르면서 은근히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난 체하지만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나중에 아이들에게 원망을 듣게 될 것이라고.
|
박재원의 공감학습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