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8.20 14:49 수정 : 2005.08.21 09:19

8월 <한겨레> ‘왜냐면’에 이어지는 그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대한민국 고3은 할 말이 많다. 말이 많을 나이이기도 하지만, 쌓인 게 그만큼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능을 앞두고 초재기하듯 시간을 쪼개 써야 하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게 하는 학교 안팎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산다. 훗날 이들 가운데 일부만이 쓰든 달든 성공의 열매를 따겠지만, 승자보다 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대입전쟁에서 모든 고3의 발언은 미래의 승패에 상관없이 집단으로 ‘유예’된다. 대입 준비를 빼면 그들의 삶은 공백이다.

그러나 무더운 8월, 찜통교실 안에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달달 외우고 있어야 할 고3 가운데는 ‘엉뚱한 짓’을 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자신의 처한 현실을 한탄할 수도 있고, 일탈과 반란의 시나리오를 꾸밀 수도 있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달달 외워야 할 시간에 그런 친구들에게 “조금만 참으라”며 손을 내미는 것도 ‘엉뚱한 짓’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최근 <한겨레> ‘왜냐면’에는 이런 학생들의 커밍아웃이 줄을 이었다.

“나는 고3년 학생이다. 그러나 늘 고3이길 거부하려 애쓴다. 아니,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길 거부하고 싶다.…”(대전외고 3 전혁, 8월6일치 왜냐면 ‘대한민국 고3임을 거부하고 싶다’)

대한민국 고3들이 대입정보를 얻고 논술시험을 준비하려고 밑줄 그어가며 읽는 신문에 이런 글이 실려도 좋은가라는 물음은 고3학생이 이런 글을 써도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덜 근본적이다. 전혁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받고 있는 교육은 몇가지 과목의 문제를 잘 푸는 기계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런 인식을 갖게 된 최근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얼마 전까지 문학 감상 점수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시험 지문으로 출제된) 시나 소설을 읽고 나름으로 생각으로 답을 골랐으나 대개 오답으로 채점됐다. 그의 사고가 문제가 요구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문학 감상을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교실에서) 배웠음에도 “문제는 한가지 사고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도 이제 기계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문제 하나가 자신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주위에서 떠들어대니까.

그의 글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전주 등 전국의 고3들이 ‘왜냐면’에서 반론과 재반론의 글을 이어갔다. 신문에서의 논쟁은 인터넷에서의 논쟁보다 호흡이 더디지만, 그만큼 ‘각’이 서 있다. 각 지역의 학생들이 두루 돌아가며 논쟁을 이어가는 양태는 흡사 정-반-합의 과정이다. 그들은 각박한 입시경쟁에 체념하는가 하면 나름의 희망을 찾기도 하고, 그 희망도 미래에 대한 피안적 태도와 눈앞의 현실을 타개하려는 태도로 갈린다.

시민단체 ‘학벌없는 사회’에서 활동한다는 하정음은 전혁의 글에 깊은 공감을 표시한다.(8월13일치 ‘거부보다는 저항하자’) 그러나 “우리가 기계가 아니길 거부하는 방법이 자퇴, 자살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며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계임을 인정하면서도 거부하는 운동, 우리가 나서서 교육개혁 운동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통받고 있는 고등학생이 교육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교육제도를 개선하려고 힘을 합쳐서 저항한다면 상황은 조금이라도 바꾸지 않을까”라고 희망을 내비쳤다. 또 “단순히 고3임을 거부하는 데서 그친다면 우리나라 교육은 아무 것도 개선되지 않고, 또 다시 우리 자녀들이 목을 매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정음의 글이 ‘희망찾기’에 관한 것이라면 부산 중앙여고 3학년 김가영의 글(같은 날 ‘그래도 희망은 있다’)은 ‘희망 붙들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몇년을 공부했는데도 점수가 원하는 만큼 올라주질 않고, 10대의 마지막마저 고스란히 공부에 바쳐야 하니까 고3은 슬프다”면서도 “우리는 곧 막연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고 사회로 나아갈 겨우 ‘첫 번째 문’을 두드릴 때이므로 점수가 높든 낮든 그 꿈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작품에 대한 획일적 이해를 ‘강요’한다는 전혁의 문제제기에 대해 “(문학작품의) 자유로운 수용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근거’에 따른 ‘작품의 올바른 해석’이다. 예를 들어, 작가의 의도가 전쟁의 아픔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작가가 작품 속에 마련해둔 근거를 찾아 자유롭지만 올바른 해석을 해야 한다”며 “아무리 수용하는 독자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전쟁의 아픔을 전쟁의 즐거움이라 해석하는 것은 수용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제 고3들의 논쟁은 ‘기계’에서 ‘문학작품 해석’으로 상징의 중심을 옮겨간다.

“눈코뜰새없이 바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시를 수능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은 전율과 감동을 맛보며 마음으로 감상할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니, 우리를 이미 10여년 동안 옭아매온 이 나라의 주입식 교육이 문학 세계에 대한 10대의 순수한 동경과, 문학작품을 그 자체로 음미하며 감상하는 우리의 정신적 능력을 애초에 박탈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대원외고 3 김정민, 8월16일치 ‘대한민국 10대 꿈은 없다’)

그는 “수능에서 시를 문제화하는 의도가 학생들이 시를 이해하는 안목을 넓히고 평소 친근하게 접하지 못하는 시를 좀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학교교육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 몇 개의 단어로써 명시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며 “수능이라는 부담스러운 시험을 위해 시를 분석하는 방법을 외우도록 하는 것은 도리어 시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켜 우리들로 하여금 시를 더 멀리하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가영 류의 ‘꿈’에 대해서도 “현재 대한민국의 10대로서 우리에게 ‘진정한’ 꿈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수능 시험을 위한 12년간의 교육은 가장 큰 꿈을 키울 수 있는 학창 시절에, 다양한 사회경험을 통해 삶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자신의 진정한 적성을 찾아가게 하는 데에 전혀 일조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우리,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 과연 ‘진정한’ 꿈이 있는가. 막연히 명문대 입학,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 돈 잘 버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설계한, 내 인생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진정한’ 꿈이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가장 최근 ‘왜냐면’에 올라온 글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대한민국 고3의 실천적 과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전주 상산고3 유윤종, 8월20일치 ‘공부기계, 우리가 거부하자’)

“답만 찾게 만드는 교육 때문에, 민주주의문화도 토론문화도 사랑도 사회 경험도 무시하는 교육체제 때문에 학생들은 일상적 파시즘에 물든 채 순종하는 기계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사람 된’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말로만 듣던 자유, 민주주의, 사회현실 등을 직접 체험하며 다시 삶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요즘에는 대기업 취업용 공부나 고시공부에만 매달려 사람 되는 걸 늦추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말이다.”

유윤종은 대한민국 교육체제의 많은 문제들이 역설적으로 희망을 찾게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교육에 문제는 많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문제가 많은 교육체제이기 때문인지 구멍도 많고 틈도 많다는 점이다. 학교는 공장을 지향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공장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교육체제의 구멍들은 요즘 들어 전보다 더 많아졌다. 일류 대학 나오는 게 행복의 길이라고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은연중에 말하고 있지만 이십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의 시대에 그 말을 전적으로 믿는 학생도 드물다.”

그는 “나도 대한민국 고3이지만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려서 여러 인권활동가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8월에는 전주에서 학생인권을 위한 행사를 준비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며 “우리가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그 틈새를 공략하면 적어도 지금의 실패한 교육은 우리를 모두 기계로 만들 수는 없다. 이제 틈새로 숨을 쉬자. 바깥 세상에 손을 뻗자. 그 메마른 시멘트 틈새 한 줌 흙에서 싹트는 민들레꽃 같은 꿈을 찾자. 교육체제의 틈새에서, 행동하는 세대가 되자. 창틀에 걸린 꿈들 인생을 장사에 비유하자면, 본전 인생 살자”고 또래들을 독려한다.

8월 한 달 ‘왜냐면’에서 이어지는 대한민국 고3들의 논쟁은 그 시절을 이미 지나온 이들의 아련한 낭만에 새삼스레 현실감을 되찾게 해준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을 교정할 기회도 준다. 그들은 교과서와 참고서만 달달 외우기에는 너무 현명하고 삶에 대해, 사회에 대해 진지하다. 온라인뉴스부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