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1 17:11
수정 : 2005.08.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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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교실에 참가한 네 나라 학생들은 공동 작업으로 직접 만든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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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아태 국제이해교육원 주최 ‘평화교실’
한국·타이·피지·스리랑카 4개국 학생 참가
말 안통해도 3박4일 함께 지내며 마음 나눠
“너는 나의 햇살/ 나의 유일한 햇살/ 하늘이 회색빛일 때 넌 나를 행복하게 해.”
한국, 타이, 피지, 스리랑카의 학생과 교사 16명은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이 소통하려면 아무래도 ‘영어’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노래는 시작일 뿐. 아이들은 나라별로 네 마디씩, 영어 노래
가락에 맞춰 자국어 가사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네 나라 말로 이루어진 새 노래가 완성되면, 이를 다시 ‘영어 발음’(정확히 말하면 알파벳)으로 표기해 다함께 부를 것이다. 제목은 <평화의 노래>다.
내 안에도 다양한 내가 존재하죠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이하 교육원)이 지난 2~5일 경기 이천시 유네스코문화원에서 연 ‘평화 교실’은 조금 어려운 실험을 하는 자리였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한 국제이해교육’을 표방했으니, 이는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네 나라 학생들을 모아 놓고 나와 남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겠다는 얘기다. 평화 교실은 그동안 평화교육 지도자(교사) 육성에 힘썼던 교육원이 학생들과 직접 만나는 첫 행사이기도 하다. 행사를 총괄한 이승미 선임연구원(교육학 박사)은 “교사와 학생, 전문가들이 모여 평화 교육의 실질적인 모델을 만들고, 아시아 곳곳에 평화 교실이 상설 운영되도록 돕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나 동물 같은 걸 새삼스레 떠올려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다른 친구들한테 설명하는데 말이 안 통해서 정말 답답했어요.” 서울 당산초교 6학년 정혜림(12)양은 행사 첫날 손짓·발짓도 모자라 머리를 바닥에 찧어 가며 자신의 얘기를 풀어 낸 소감을 털어놓았다. 아이들이 제일 처음 한 일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삶을 다른 이의 삶과 견주어 보는 것이었다. 이 선임연구원은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평화 교육의 출발이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나와 남의 무수한 공통점에 관심을 갖는 것이 그 다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평화 교실에서는 무려 5개 국어가 난무했다. 수업 진행 교사가 영어로 말하면, 4개국 교사가 아이들 등 뒤에서 자국어로 통역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 작업과 놀이로 구성된 수업은 대부분 아이들끼리 소통하며 더불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어서, 교사들의 통역은 체면치레고 나머지는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었다.
타이 젤리 먹으며 한국 드라마 시청
교사들은 밤마다 교사 회의를 열어 고민을 거듭했다. “아이들이 의사소통 때문에 혼란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은 아닌가? 너무 많은 과제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 시간, 아이들은 2층 숙소에 모여 타이 젤리와 스리랑카 과자를 나눠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저 여자가 유명한 사람이냐?” “그래. 예쁘지?” “예쁘다, 저 남자도 잘 생겼다.” 이런 대화가 단어 한 두 개와 손가락질만으로 이어졌다. 둘쨋날까지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아 교사들의 걱정을 샀던 당산초교 6학년 최지선(12)양이 귀띔했다. “타이에서 온 콤글릿이 밥을 잘 못 먹어요. 한국 음식이 잘 안 맞나 봐요. 피지에서 온 세미 오빠는 2000년에 전쟁을 겪었대요. 그래서 빨간색을 싫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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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을 이뤄 콜라주나 종이 조형물등으로 다양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를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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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마지막 미술 수업 시간에 멋진 공동 작품을 선보여 교사들에게 안도와 기쁨을 안겨 줬다. 편견 없는 소통과 사소한 의견차를 극복하는 일에선, 아이들이 어른들을 앞서 갔던 것이다. 피지의 세미, 한국의 은혜와 지선은 전쟁의 기운이 평화의 비둘기 덕분에 점점 푸른게 변해 가는 모습을 종이 조형물로 표현했다. 타이의 콤글릿, 한국의 희연, 스리랑카의 니루쉬는 나무젓가락과 철사로 만든 감옥을 푸르고 성성한 야자나무들로 둘러싼 다음 “NO WAR”라고 꾹꾹 눌러썼다. 스리랑카의 시판과 타이의 파이, 한국의 혜림은 “사람과 동물에게 평화를”이라는 주제로 멋진 콜라주를 만들었다.
평화 교실 문을 내릴 무렵, 다시금 노랫소리가 들렸다. “온 지구 모두/ 사랑과 기쁨/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하나.” 한국 아이들이 가사를 붙인 부분을 네 나라 아이들이 함께 불렀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아도 목소리는 힘차다. <평화의 노래>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려고 만든 노래가 아니었다. ‘친구가 제 나라 말로 만든 부분을 열심히 불러야 그 친구가 기뻐할 것’이라는, 부르는 이들의 마음이 아름다운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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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잇는 ‘특별한’ 교육
1. 공통점 찾기
도화지를 네 칸으로 나눈 다음 각자 좋아하는 색깔로 동물 등을 자유롭게 그린다. 완성된 그림을 벽에 붙인 뒤 비슷한 그림을 찾아 털실로 연결한다. 내 안에 다양한 ‘나’가 존재한다는 것과, 전혀 다른 생김새와 성격을 가진 친구의 마음에도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수학 부호 바꾸어 풀기
수학 부호 규칙을 바꿔 +는 곱하기, -는 나누기 등으로 새로운 규칙을 정한 뒤 20개 남짓 수학 문제를 만들어 함께 푼다. 규칙을 바꾸어 문제를 풀라는 지시문이 질문지에 나와 있는데도, 몇몇 아이들은 질문지를 제대로 읽지 않고 기존 규칙대로 문제를 빨리 푸는 데만 집중한다. 고정관념은 종종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는 걸, 규칙은 우리가 합의한 ‘약속’이지만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약속’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일깨워 주는 놀이다.
3. 특별한 보물 찾기
아이들이 모둠을 이뤄 곳곳에 있는 교사들을 찾아다닌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서로 협력해야만 풀 수 있는 과제를 준 뒤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 교사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 마지막 교사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내고 보물상자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 보물 상자에는 각각 사랑, 평화, 힘, 정의 같은 이름표가 붙어 있다.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사랑’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꺼낸 뒤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너에게 사랑을 줄게”라고 말하도록 유도한다. ‘정의’ 상자를 열면 정의가, ‘평화’ 상자를 열면 평화가 흘러넘치는 아주 특별한 보물찾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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