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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1 17:35 수정 : 2005.08.21 17:42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급히 가 봐야 할 데가 있어 공부 마치자마자 조퇴하고 나가는데, 제자 이지은과 정혜린이 국기게양대 아래서 토닥거리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그냥 지나칠 순 없는 일. 토닥거리는 까닭을 물으니 참 우습지도 않은 일이다. 이지은이 정혜린에게 천원 주고 귀걸이를 샀다. 그러고 나서 꼼꼼히 살펴보니 마음에 안 들어, “야, 귀걸이 다시 물러 줘” 했다. 정혜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늘 천원이 필요해서 아끼던 귀걸이를 판 거야. 물러 줄 수 없어.” 이지은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 주라, 응?” “안 돼, 나 천원 꼭 쓸 데가 있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물러 주라, 응?” “안 된다니까.” 이렇게 끝도 없이 입씨름을 하고 있기에, “둘이 잘 해결해라. 선생님은 바빠서 그만 간다” 하고는 학교를 나섰다. 육교 건너 한참 가다가 주머니가 허전해 확인해 보니 손전화를 교실에 놓고 오질 않았는가. 부랴부랴 교실에 들러 손전화 챙겨 갖고 잰걸음을 치는데, 국기게양대 아래서 정혜린과 이지은이 그때껏 해결을 못 보고, “물러 주라, 응?” “안 돼, 나 천원 꼭 쓸 데가 있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물러 주라, 응?” “안 된다니까.” 이러면서 퉁퉁거리지를 않는가.

워낙 내 갈 길이 바빠,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이지은에게 주며, “예 있다, 선생님이 그 귀걸이 천원에 살게” 했더니, 이지은이 벌컥 성깔을 돋우며, “됐어요. 선생님은 끼어들지 마세요!” 이런다. “온 녀석, 알았다. 그럼 둘이 잘 해결해라. 선생님은 바빠서 그냥 가마” 하고 두 제자를 등졌다. ‘녀석들이 잘 해결할까?’ 궁금해 하며.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니 정혜린이 눈에 띈다. 해서 다짜고짜 물었다. “혜린아, 어제 귀걸이 사건 잘 해결했니?” “네.” “어떻게 해결했어?” “어제는 천원이 꼭 필요해서 물러 주지 않았어요. 그 대신 오늘 물러 주기로 했어요.” “아, 그래? 오늘 천원 가지고 왔어?” “네” 하면서 정혜린이 천원을 꺼내 보여 준다.

온 세상에, 기특하기도 하지. 스스로 멋진 해결책을 찾아내질 않았는가. 아이들의 능력은 이렇듯 대단하다. 아이들 스스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까지 교사가 끼어들어 간섭하면 안 된다. 어제 내가 그랬다가 혼쭐만 나질 않았나.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정혜린이 이지은에게 천원을 주며, “자, 내 귀걸이 돌려줘” 하니까, 이지은이 “이런, 바보. 깜빡 잊고 귀걸이 안 가져왔네” 하고는 어이가 없는지 정혜린을 보며 웃는다. 어제 그토록 끈질기게 토닥거리더니 하루 지나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로 마주보며 낄낄거린다. 하룻밤 자고 나면 이렇듯 시간이 약도 되고, 사람 참 우습게도 만든다.  

송언/서울 동명초등학교 교사 so1310@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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