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8 16:45
수정 : 2005.08.28 16:47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아이들아, 잘 지내고 있느냐.
시간이 훌쩍 지나 이제 방학도 거의 마무리 시점에 와 있구나.
그런데 녀석들아! 아무리 무심하다지만, 어찌 편지(아니, 메일)도 한 통 없느냐. 선생님은 가끔 학교 도서실에 들러서 너희들 근황을 살피고는 한다. 도서실 일지를 보니 일주일에 두 번 문을 열 때마다 70~80명씩 왔다 갔더구나. 이쁘고 대견스러웠다. 너희가 책을 읽는데 내가 이토록 흐뭇한 것은, 책에는 교실을 뛰어넘어 너희가 스스로를 살찌울 수 있는 근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힘써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으니, 얻는 것이 어찌 지식뿐이겠느냐.
선생님은 요즘 주말을 뺀 나머지 시간을 강화도에서 지내고 있다. 오전에는 마니산을 오르고(며칠 전에는 광복절 기념으로 참성단에 올라 만세 삼창을 했다) 오후에는 책도 읽고 원고도 쓰면서 하루를 보낸다. 몸이 안 좋은 아들 녀석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선생님이 묵고 있는 곳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곳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했으나, 익숙해지니 남는 것이 시간이더구나. 책도 읽고, 논길도 걷고, 이웃과 이야기도 나누고, 무엇을 해도 시간이 충분했다. 저녁에는 개구리, 맹꽁이, 온갖 풀벌레 소리까지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감각이 새로 깨어나는 듯했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끼고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것이냐.
밖으로 나돌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은, 한낮에는 이 땅의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산을 올라도, 바다엘 가도, 유적지엘 가도 초등학생들은 많은데, 눈을 씻고 봐도 너희 또래는 없었다. 짐작컨대 대부분 학원과 피시방을 오가는 시스템에 발이 묶여 있을 것이다. 그래, 너희만한 때는 공부에 전부를 던져 보는 것도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철저하게 이런 시스템에 길들여지면서 스스로 생활을 가꿔 가는 자생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이번 방학 때 선배들과 어울려 두 차례의 1박2일 주말 야영을 다녀왔다. 그런데 어찌 그리 똑같으냐. 해 주는 밥 먹고, 폭죽놀이하고, 수시로 휴대전화 문자 주고받고, 그러고는 쫓기듯 카드나 고스톱으로 밤을 새더구나. 이해가 안 되는 바 아니었으나, 은근히 안타깝고 속상했다.
또 선생님 잔소리가 시작되었구나 하겠지만, 선생님에겐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방학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개학 뒤에 나누기로 하자. 선생님은 야채와 음식 쓰레기 거두어 오리 밥 주러 갈 시간이다. 여기에서는 오리와 개가 온갖 음식 쓰레기를 다 해결하더구나. 그럼 안녕. 이상대/서울 신월중 교사
applebighea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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