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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에 열중하고 있는 이동문(서울 마포초 5)군, 이유진(마포초 3)양, 이동혁(일산 문화초 5)군. 친척인 이들은 3년 전부터 시간날 때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독서모임을 한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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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학생 독서지도 어떻게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이현숙(41·서울 동작구)씨는 ‘독서’라는 말만 들어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지난 3월 서울시 교육청의 독서지도 매뉴얼이 나오자마자 과목별로 2권씩의 추천도서 목록을 알려주고 2학기에 평가를 하겠다고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서술형 평가를 하겠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1학기 기말고사에는 논술형 문제가 떡 하니 나왔다고 한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곧 독서이력철을 시행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독서교육과 논술이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 독서지도 매뉴얼과 추천도서 목록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서술형 평가, 서울대의 통합형 논술시험 계획 발표, 독서이력철 도입 계획 등의 발표가 잇따르면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독서와 논술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독서와 논술 지도를 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안들은 나오지 않아, 학부모들은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독서·논술 학원들만 곳곳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씨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권장목록 꼭 다 읽을 필요는 없어
읽은 뒤엔 짤막한 메모·편지 권할 만
또래끼리 독서토론·모임도 효과적 ● 독서교육 제도 어찌 되나=당장 2학기부터 바뀌는 것은 학교 지필고사에서 서술형 평가 문항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과목에서 의무적으로 30% 가량을 서술형이나 논술형으로 문제를 출제하라는 것이 서울시 교육청의 지침이다. 학생들은 과목별로 교과서 말고도 단원별 관련 도서도 여럿 읽어야 한다. 서울 시내 학교들은 교육청이 발표한 교과별 추천도서들을 학교도서관에 일괄적으로 비치하기 시작했고, 부산시 교육청은 독서인증제를 하고 있다. 다른 교육청들도 독서교육 방안을 내놓을 태세다. 2007년 고교에 입학할 학생들은 학생생활기록부에 독서 이력이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독서 이력을 대학별로 입학 전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구상이다. 따라서 현재 중 1~2학년생이라면 독서 이력 대비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학교에서 논술을 정식으로 가르치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전문가들은 아이의 수준과 관심에 맞는 책을 선택해 날마다 꾸준히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올해 초부터 학급에서 아침독서운동을 펼쳐온 홍천 동화중 한명숙(44) 교사는 “게임 매뉴얼만 아니라면 어떤 책을 선택해도 무방하다”며 “대신 고른 책은 시간이 오래 걸려도 날마다 일정 시간을 쪼개 끝까지 다 읽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청 등이 제시한 권장도서를 다 읽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서울 송곡여고 이덕주(38) 사서교사는 “교사들이 권장도서를 모두 수업에 모두 활용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단원별로 한 권쯤 제시된 책은 정독해서 읽고 나머지는 선택적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독후 활동 때문에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초·중학생이라면 독후감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짤막하게 책을 읽은 소감을 메모해 두는 걸로 충분하다. 용인 정평중 김전이(39) 국어교사는 “한 달에 한 권쯤 주인공이나 저자에게 질문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하는 식으로 독후감을 쓰면 부담도 없고 흥미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상해서 쓰기, 꾸며 쓰기, 내용 바꿔 쓰기 등도 권할 만하다. 이런 활동은 서술형 평가에 대한 좋은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생각하는 힘도 기르면서 표현력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는 독서 토론이 꼽힌다. 비슷한 또래 서너 명이 일주일에 한 차례쯤 모여 읽은 책을 놓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초·중학생들 가운데는 이런 식의 독서토론 모임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초등 5학년 아들과 3학년, 5학년인 조카 둘을 데리고 3년째 책 읽기 지도를 해 온 이민정(38·경기 고양시)씨는 “아이들이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표현력, 사고력이 아주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독서토론 모임은 많은 구립·시립 도서관들도 운영한다. 서울 광진정보도서관(gwangjinlib.seoul.kr)은 초등 1~6학년생 대상으로 8개 모임을 열고 있다. 도서관 독서회는 사서나 독서지도사가 곁에서 도와 주므로 초보자도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독후 활동을 쓰기나 토론식으로 할 필요는 없다. 에베레스트 관련 책을 읽을 땐 근처 산을 올라보면서 주인공의 느낌을 재현해 본다든지, 파브르 곤충기를 읽으면서 실제로 곤충을 길러 본다면 체험적 책 읽기로 이어져 깊이 있고 실질적인 독서가 될 수 있다. 동서양 고전처럼 어른에게도 벅찬 책을 읽을 땐 “무리하게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거듭해 읽거나, 어려운 대목은 과감히 뛰어넘어도 된다”고 서울 관악중 백화연(46) 국어교사는 충고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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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인천 서구 성남동에 있는 공부방 ‘어깨동무 신나는 집’에서 중학생들이 모여 <한국사 편지>를 읽은 뒤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3년째 주마다 한 차례씩 이 곳에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승희(신현여중1) 김샛별(〃) 김대전(신현중2), 이승규(신현중1), 김지은(신현여중1)양. 인천/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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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앗아가면 ‘독’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는 지난 7일 독서이력철 도입과 관련한 최종 보고서를 심의·의결했다. 2007년 고교 신입생부터 학생부에 독서 이력을 기록하도록 하고, 학생들의 독서 및 진로와 관련해 전문적으로 상담해 독서 이력을 확인하는 독서 담당 교사제를 두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세부안을 보면 학생들은 학기 초마다 관심 분야와 독서 영역에 대한 기초적 분석, 독서 목록 등을 담은 독서계획서를 만들고, 핵심 내용 요약, 독후감, 에세이 등 한 학기 동안의 독서 활동을 기록하는 독서기록장을 작성해야 한다. 독서 담당 교사는 학생의 독서계획서를 바탕으로 진로와 교과 기반 독서에 대해 상담하고, 학기 말에는 학생부 ‘독서활동상황란’에 △독서 경향(독서량, 독서 분야, 독서의 흥미와 지속성) △이해 수준(객관적 이해와 창의적 이해) △책 이름(선택 사항) 등을 기록한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상세한 독서 계획이나 독후 활동, 대입 전형 반영 여부 등은 전적으로 학생들과 대학들의 자율에 맡기겠다고 한다. 하지만 독서 단체들과 교육 단체, 교사들은 독서 이력이 입시에 반영되면 독서 사교육 조장, 독서 부풀리기, 즐거운 독서활동 방해 등의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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