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4 19:20
수정 : 2005.09.0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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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당시 유명한 비극 작품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는 원리나 진리가 아닌 ‘이야기’를 철학하기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철학자다. 렘브란트의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16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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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문학사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서구 최초의 문예비평서라고 한다. 또한 문학도들이 필독서로 삼는 것이기도 하다. <시학>하면 저 유명한 모방(mimesis)과 정화(catharsis)의 개념을 상기할 것이며, 고대 희랍 서사시와 비극에 대한 문학 이론을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들도 <시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시학>을 ‘이야기 철학’ 입문서라고 부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적으로 ‘이야기’에 대한 철학적, 논리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오는 <시학>을 보건대 그렇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시학>의 적지 않은 부분은 유실됐다. 움베르토 에코도, 현존하는 <시학>이 주로 비극을 논하고 있으므로, 유실된 부분에 희극론이 있으리라고 상상하여 이를 <장미의 이름>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활용한 바 있다.
현존하는 <시학>이 일종의 ‘이야기 철학’ 또는 ‘서사철학’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들어 보자.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가져야 하는데, 플롯, 성격, 언어 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노래가 곧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들의 조직, 즉 플롯이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을 모방하며 그에 따른 행복과 불행을 모방해서 표현한다.… 그러므로 사건들을 조직하는 것,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무슨 일에서나 목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문학 용어 ‘플롯’이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희랍어 ‘뮈토스’(mythos)를 번역한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이야기’라는 뜻이다(신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즉 ‘신화’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당시 유명한 비극 작품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며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필연성 또는 개연적 연결성을 논한다. 결국 플롯에는 “사소한 불합리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서사시 작가나 비극 작가)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시인이 역사가와 다른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데 반해, 역사는 개별적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런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역사학이 인간의 실제 경험들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철학은 인간의 가상적 경험의 이야기가 내재적 논리성을 갖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까지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고 ‘세계의 진리’를 추구하던 철학의 전통에 없었던 새로운 철학 연구의 대상을 제시한 것이다. 원리나 진리가 아닌 허구(픽션)를 철학하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이야기 철학’은 시작되었다.
이는 오늘날 철학이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예술 분야인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컴퓨터 게임 등과 함께 탐구하고 함께 놀 수 있는 타당성이 이미 2300여년 전에 제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야기 구조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재미를 즐기고 싶다면, 또한 추리적이고 ‘말이 되는’ 이야기를 짓고 싶다면, 청소년들도 <시학>이 전문 문예비평서라는 격리감에서 벗어나 그것을 주석과 함께 꼼꼼히 읽어 볼 만하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k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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