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4 19:45
수정 : 2005.09.04 20:44
걷지 못하는 ‘붙들이’
이웃집 라디오 고쳐주고
미음 아픈 사람 품어주네
허름한 점방 안이 환하네
붙들이. 사람 이름 치곤 평범하지 않다. <삼거리 점방>의 주인공은 ‘붙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무릎 아래쪽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일어서지 못하고 기어만 다닌다고 해서 붙여졌다.
선천적 장애인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숨기기에 급급하고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이들도 많다. 학교에 가더라도 특수학교라는 별도의 울타리 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 사회에서 직장을 얻는 이는 가물에 콩나는 격이다.
하지만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동네 하잠리에서 붙들이는 특별하지 않다. ‘뿔뿔이’라고 놀리는 을숙 아재의 농도 그저 농일 뿐, 붙들이는 하잠리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대우받는다. 학교에도 간다.
간혹 붙들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붙들이 엄마는 그때마다 “똑같은 사람이 어딨노?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이 있고, 기운 센 사람이 있으머 약한 사람도 있제. 그거맨치로, 걸어 댕기는 사람이 있으머 몬 걷는 사람도 있는 기라” 하며 편견에 일침을 가한다. 언제나 든든한 믿음을 보여 주는 엄마 곁의 붙들이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삼거리 점방>은 장애를 다루었다기보다는 다양성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는 근거 없는 편견에 대한 도전을 다룬 이야기이다. 즉, 장애라는 가장 민감한 소재를 끌어들여 사회적 고정관념과 편견에 가차없이 주먹을 날리는 것이다.
메시지는 벌침처럼 강렬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부드럽고 여유가 있다. 붙들이의 한결같은 웃음과 헌신이 그 증거다. 고생고생해서 도장, 목공, 전자제품 수리 기술을 배우고 일자리까지 얻지만 치매기가 있는 엄마를 돌보기 위해 기꺼이 일을 그만두고, 어느 집에서 가전제품이나 기계가 고장났다고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고쳐 준다.
<삼거리 점방>은 가슴 뭉클하고 잔잔한 감동 또한 잔뜩 머금고 있다. 붙들이가 ‘삼거리 점방’을 인수하고, 지극 정성을 쏟았던 생면부지의 아이와 아이 엄마를 가족으로 맞아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는 ‘해피엔드’ 구조는, 그 전형적인 구성 방식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휘어잡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말처럼 누구라도 “작고 허름한 점방 안으로 들어가 그 집 식구들과 눈이 마주치게 되면, 이상하게 평온한 미소에 그만 마음이 턱 놓이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갑자기 풍성하고 넉넉하게 빛나 보이기 시작할” 것임이 분명하다.
몸이 불편하지만, 웃는 얼굴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한 눈빛과 미소를 도무지 감출 수 없는 사람들. 책을 읽은 뒤 그들의 표정과 미소를 상상하며 하잠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 보는 건 어떨까? 울산 울주군에 가면 실제 붙들이가 살았던 하잠리가 있다고 한다. 선안나 글, 고광삼 그림. -느림보/75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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