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교실
기말고사를 보고 나서 “엄마, 나 어떡해? 이제 시험도 얼마 안 남았는데 분량은 너무 많고 아직 컴퓨터랑 기술가정 공부 다 못했는데 엄마 어떡해….” 홍성군의 작은 면에 있는, 전교생이 100명을 갓 넘는 작은 중학교의 기말고사가 내가 이토록 확고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줄 줄은 나도 몰랐다. 며칠 전에 끝난 3일 간의 길고 길었던 1학기 기말고사. 중간고사에 비해서 시험 범위가 많은 기말고사를 준비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과외도 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우리 집 상황으로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등 총 13과목을 공부하기란 참 머리가 하얘지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선생님의 기대와, 부모님 그리고 나를 아껴 주시는 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부담감은 더 컸다. 내 방에 혼자 틀어박혀서 어리기만 한 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듣기 싫은 소리를 해 가면서 진짜 컴퓨터 한 번 켜지 않고 공부를 했다. 평소에 꾸준히 하지 않고 이렇게 기말고사가 닥쳐오자 몰아서 공부하는 나도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해야 된다는 생각 아래 하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공부를 했다. 그런데 시험이 3일 남았을 때, 아무리 힘들어도 이번에는 울지 않으려고 다짐했던 일이 깨지고 말았다. 기술가정과 컴퓨터. 이 단 두 과목 때문에, 아니 어쩌면 내 짧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하여튼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찌나 크게 울었던지 엄마께서는 무슨 일인가 하고 내 방에 들어오셨다. 나는 엄마가 위로를 해 주기를 바랐는데 왜 우냐고, 네가 뭘 잘했다고 우냐고, 그러게 미리미리 조금씩 해 놓았으면 지금 이러지 않아도 됐을 것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엄마도 내가 시험을 잘 보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잘 보라는 소리 한마디 해 주지 않으시는 엄마가 정말 미웠다. 3일 뒤 기말고사가 시작되었고, 나는 최대한 진정하려 애쓰면서 시험을 보았다. 항상 시험볼 때는 내가 한 만큼 풀 수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시험을 못 봤지만 웃으면서 보내려고 노력했다. 내 친구 성아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펑펑 울 때도, 정말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울지 않았고 성아를 토닥여 주면서 내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집에 와서 정신없이 울었다. 시험이 끝난 지금,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며칠 전의 나와 다른 애들의 힘든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을 때, 아마 수많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돈, 명예, 음식, 사랑, 우정, 행복, 행운, 책, 직장…. 그리고 이런 것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만족감을 얻게 된다. 가끔은 나도 ‘나에게 많은 돈이 있다면…’ ‘나에게 행운이 뒤따른다면…’ ‘나에게 값진 명예가 있다면…’ 하는 생각들을 해 본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스스로의 노력도 없이 많은 것을 얻길 원하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노력이 뒤따른다. 나도 그렇고 성아도 그렇고 그 밖에 다른 애들도 그렇고 시험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아가 운 이유는 단지 시험을 못 봐서가 아니라 자신이 노력한 만큼 그렇게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슬픔, 또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는 마음이 겹쳐져서 그렇게 보는 사람까지도 슬프게 펑펑 울었던 것이다. 운동 선수였던 체육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항상 말씀하신다.“자신이 넘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 한계를 넘어선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것이 바로 스스로의 노력이다. 곁에서 아무리 넘겨 주려고 해도, 노력하는 마음과 자세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나에게 한계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분명히 한계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미리 그 한계를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발판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같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노력이 아닐까? 이민경/홍성서부중학교 2학년 [평] 어려움 이겨내려는 노력 아름다워 요즘 서울대 입시 문제로 인해 많이 시끄럽다. 교육이 가능성과 희망이 아닌 차별과 불평등을 더욱 온존하고 강화하려 할 때 우리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이 글은 학생이 시험을 치르며 갖게 된 느낌과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며 한계를 이겨내려 하는 삶의 자세가 예쁘게 담겨 있다. 시골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문화 환경이나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하지만, 발전 가능성까지 없지는 않다. 이런 학생들도 가능성만으로 대학에 가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진수/충남국어교사모임, 홍성서부중학교 교사 jinja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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