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더 빨리’ 보다 자율·다양성 살찌워야

전국 초·중·고 교사 3800여명으로 구성된 협동학습연구회 회원들이 이러닝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협동학습연구회는 격주로 정기토론 모임을 하는데 100여명 정도가 참여한다. 협동학습연구회 제공

이러닝 공부가 바뀐다 <3부> ②앞으로의 남은 과제는

벌써 여러 해 우리 주변에는　교육정보화라는　구호가 넘쳐났고, 정보통신기술(ICT)활용교육　또는　이러닝이라는　수업방식이 활발하게 전파됐다.　그속에서　교사들은 물밀듯이 학교로 들어오는　하드웨어 인프라를 받아들였다. 또 정보통신기기 활용 방법과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러닝　강국’으로 앞서나가고 있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 외국의 많은 학교들이 잇따라 방문하고 있다. 이쯤되면 올해의 ‘이러닝 원년’으로 선포한　교육부의 의욕이 일찌감치 성과를 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토론·협동없는 ‘주입식’ 그쳐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온　사이 애초의 취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면이 없지 않다. 왜 이러닝을 실시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어지고　그저　교육의　겉모양 바꾸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느낌이다. 서울 신목중 함영기(46)　교사는　“첨단매체에 의존하는　수업이　교육의 본말을 전도시켜 ‘교육’이 아닌 ‘단순 지식의 습득’이나 ‘기술 전수’에 머무르고 있다”고 이러닝의 현실을 요약했다.

학교에 새로운 장비가 들어오고, 첨단 수업 환경이　구축되고, 새로운 수업방법이 소개될 때마다 새로움에 대한 찬사와 속전속결로 배워서 하루라도 빨리 수업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런 노력들이　기존　교실수업의 한계들을 얼마나　극복했고, 학교　교육을 얼마나 정상화시켰는지를 따져보려는　후속작업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함　교사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러닝은 도입 당시　기존의　교실수업이　가지고 있던 토론의 부재,　교사 위주의 일방전달식　수업, 협동학습의 불가 등을　극복하고, 학생이 주도하고, 토론하고 협동하며, 직접 정보를 찾아서 배우는　학습 문화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 이러닝은　공부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 단순 지식의 전달, 주입식　암기교육에 쓰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울시내 한　고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정아무개(35)　교사는　“어떻게 더 많은 시간 동안 학생들을　공부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오던 학교와　교육당국으로선 이러닝이 학생들의　공부시간만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닝이 학습자들에게 양질의 수업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국가적　골칫거리인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업체 상업적 콘텐츠만 넘실

실제 학교 현장에　가보면 발빠르게 학생들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한 온라인　교육　업체들만 득세하고 있다. 24시간 학교　교사로부터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이버가정학습’을 이용하고 있는　학생비율은 아직 전체의 10%를 넘지 못한다. 심지어　교실 안에서 버젓이 상업적 콘텐츠가 사용되고 있어,　교육의 상품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질의 콘텐츠를 충분히　개발해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학교를 정상화시켜서 사교육　수요를 줄여야 할　것을 수능방송이니 컴퓨터 자격증　강좌　등 사교육　방식으로　공교육을 보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사회에서 이러닝의 확산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사와 학생 모두 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애초의 취지를 망각한 채 일방적인　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이러닝은 오히려　학교　교육에 독이 될 수도 있다. 7차　교육과정에 △유연하고 다양한 학습활동　제공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　및 문제해결력, 창의력　신장 △동기유발을 통한 능동적인 학습 참여 유도 △교육의 장 확대 등으로 적시된 이러닝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상기할 시점이다.

서울시교수학습지원센터 홍순표 소장은 “현실을 내철하게 분석한 뒤, 5~10년을 내다보고 이러닝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며 “이제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점검하고 반성할 때”라고 지적했다.

교사 자발성 키울 정책 시급

아울러 이같은 필요성을　구현하는　데 핵심 동력이 되는　교사들의 자발적 의지를 키울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교사들의 자발적인 연구공동체를 장려하고 지원함으로써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염광중 박근우(36)　교사는　“자꾸 뭔가를 조직하고　구조화하고 이를 통해 시스템화하려는　정책은 단기적 효과를 바라는　조급함에서 비롯된다”며 “정보화 사회에서 바람직한　교육은 ‘자율’과 ‘다양성’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박창섭　기자 [e-mail] <끝>

“공교육 보완 ‘올라인’ 교육체제로”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급격한 교육환경 변화와 함께 교육수요자 중심의 자율적인 맞춤교육이 강조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한 이러닝이 교육혁신의 핵심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EBS수능강의, 사이버가정학습, 중앙교수학습센터인 ‘에듀넷’ 등 국가가 주도한 각종 이러닝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시행되면서 이러닝은 공교육의 보완재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아가 교육내용과 교육여건에 따라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을 조화롭게 융합한 ‘올라인(All-line) 교육체제’로 발전하면서 우리 교육의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속성을 생각해볼 때, 이러닝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이 거듭될 것으로 예측되고, 이 방향은 교육수요자 개개인의 학습욕구 충족과 교육을 위한 시공간의 확대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추진하고 있는 ‘유러닝(Ubiquitous Learning)’ 사업은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차세대 정보통신기술의 핵심으로 주목되고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은 교육 매체의 범위를 가전기기, 가구, 사무기기 등 모든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시킴으로써, 교육의 시공간 범위를 극대화하고 좀더 인간 중심의 교육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러닝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평생학습국가 건설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교육의 각 분야에 이러닝을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 마련 및 부처간 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은 정부의 이러닝 정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정책입안자 및 수혜자 중심의 이러닝 연구·개발과 현장 중심의 이러닝 정책 추진에 매진하고 있다.

황대준/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

지난 5월 30일부터 한겨레신문사와 교육인적자원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공동 기획으로 총 12회에 걸쳐 이러닝 특별기획 보도가 이루어졌다. 국민들에게 국내 이러닝의 현황과 해외 이러닝 우수사례 등을 보여줌으로써 이러닝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고, 새로운 교육 방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함양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다 할 것이다. 특히, 해외 선진국의 이러닝 우수사례들은 국가 이러닝 정책 담당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난 3개월여동안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특별기획 보도를 본원과 함께 추진해 준 한겨레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황대준/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