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1 16:29
수정 : 2005.09.12 15:31
시로보는 아이들마음
추석 명절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벌초하느라 일요일이면 골짜기마다 풀 베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지난 여름 내내 빗물 실컷 먹고 제 세상인양 쑥쑥 자라난 쑥이며 망초, 한삼넝쿨 따위 풀들이 싹 깎이고 나니 둥그런 무덤들이 여기 저기 말쑥하게 드러난다. 어른들이 벌초하러 가면 꼭 따라가보라고 아이들에게 일러줬더니 지난 일요일에 벌초간 아이가 여럿이다.
‘두꺼운 바지, 긴 양말, 긴 옷을 입고 축구화 신고 벌초를 따라갔다. 증조할아버지 무덤에서 맥주 한 병 조금 붓고 과자 뿌셔서 놓았다. 아버지가 예초기로 풀 깎은 거를 나는 까꾸리로 풀을 치웠다. 가다가 우리 형이 도마뱀을 보았다.’(손해곤)
‘할머니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맥주를 부어놓고 빵도 놓았다. 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먹을까?’(박상아)
‘할아버지 무덤에 와서 삼촌은 풀 깎는 기계에 시동을 걸었다. 왱 왱 멀리 뻗치는 것 같이 시끄럽다. 기계하고 돌하고 부딪힐 때 불 같은 기 나왔다. 도토리도 줍고 풀도 깎고 까꾸리로 깔끔하게 쓸었다. 할아버지한테 절을 하였다.’(하동균)
멀리 사는 친척들과 함께 조상들 산소를 찾아 풀 베고 풀 치우고 가을 열매도 줍는 일은 아이들에게 좋은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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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가는 길
벌초하러 고정 골안산에 간다.
다른 사람들도 가는지
차가 쌩 하고 지나간다.
우리는 경운기라
느리게 간다.
풍경도 보고
아빠가 몰래 배도 따서
깎아 줬다.
밖에서 먹는 거라
더 맛있다.
차는 저 밑에 있고
우리는 풀을 뚫고 계속 올라간다.
아빠 머리에
거미와 벌레가 떨어진다.
짐칸에 서서 도토리를 땄다.
배가 고파
다람쥐처럼 도토리를 먹으니
떫다.
아빠와 벌초하고
절하고 왔다.
(김준혁/밀양 상동초등학교 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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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밀양상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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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대신 경운기 타고 느릿느릿 풀숲을 헤집고 올라가다보면 거미줄이 머리에 걸리고 팔만 뻗으면 나무에 달린 열매가 손에 닿는다. 해마다 명절을 앞두고 하는 벌초, 시끄러운 기계로 후다닥 풀만 베고 돌아내려오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구석구석 가을숲을 만나고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승희/밀양상동초등학교 교사
sonun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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