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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구 도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낙서장 <낙장불입>을 펴들고 웃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은 낙서대회를 열고 낙서장을 편집한 문웅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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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원고 낙서장 ‘낙장불입’
수업시간 낙서하는 학생들 보며
교사가 “창의력 재발견” 대회 제안
작품 140점 가운데 50점 뽑아 책으로
공부·진로 등 다양한 고민 담아내
‘이 낙서장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함’
대구시 달서구의 도원고등학교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50쪽짜리 낙서장 <낙장불입>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낙장불입’이 ‘한번 낸 패는 다시 물리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한번 펴면 놓을 수 없다’는 의미를 담아 낙서장 이름을 지어 봤어요.” 글귀를 쓰고 낙서장의 이름을 지은 도원고 2학년 추민영양의 말이다.
추양의 말처럼 <낙장불입>을 펴면 쉽게 덮기 힘들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칠판에 무엇을 판서할까?’(13쪽, 1학년 최지영), ‘오엠알(OMR) 답안지가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다’(29쪽, 2학년 전지윤), ‘원하는 음료, 과자가 원하는 가격에 판매되는 자판기’(40쪽, 2학년 윤지민) 등 낙서를 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기발한 낙서들이 많기 때문이다.
<낙장불입>은 교내 낙서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작품 중 일부를 간추려 묶은 우수 작품집이다. 올해로 두 번째 개최한 교내 낙서대회는 1, 2학년을 대상으로 지난 10월17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 이 대회는 참가 희망자들이 낙서대회 양식을 받아 자유롭게 낙서한 뒤 교무실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대회를 개최한 인성인문사회부의 교사들은 학생 127명이 제출한 약 140점의 작품들 중 창의성, 독창성이 돋보이는 20점의 낙서를 선정해 학교 복도에 붙였다. 그리고 1, 2학년 학생들 가운데 100명을 무작위로 뽑아 학생 심사단을 꾸리고 직접 마음에 드는 낙서 작품 두 개에 스티커를 붙여 심사하게 했다.
출품된 작품들에는 대부분 시험이나 수업, 진로 등 학생들의 평소 고민들이 녹아 있다. 1학년 노예진양은 종이에 카카오톡 대화창을 차용한 낙서(수업시간에 몰래 원하는 상대와 ‘까톡’하기)와 학교 시험지와 오엠알 카드 디자인을 차용한 낙서(시험지에 내 맘대로 시험문제를 출제해보자)로 대상을 받았다. 노양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출제한 문제라면 쉽게 100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낙서를 했다. ‘까톡’ 낙서장은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핸드폰을 2G로 바꿔 카톡을 쓸 수 없게 돼 종이 위에서라도 ‘카톡질’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라 말했다.
대회를 열고 <낙장불입>을 제작해보자는 아이디어는 인성인문사회부장인 문웅열 국어교사가 냈다.
“수업 중 낙서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낙서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자신의 생각도 드러내는 것 같아 교내 대회로 열어봤다. 학생들 반응도 긍정적이고 교사 입장에서도 좋다. 평소 학생들이 하는 생각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창의력도 재발견할 수 있다. 어떤 선생님은 낙서장을 펴낸 뒤 마음에 드는 낙서의 원작자 학생에게 사인을 받았다.”
문 교사는 수상작을 비롯해 참신한 낙서 50점을 골라 낙서를 그린 학생들에게 밑그림을 부탁했다. 학생들이 다시 그린 낙서의 밑그림을 엮어 도원고 학생들 모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낙서장 1500부를 펴냈다. <낙장불입>의 속지 첫 장에 있는 ‘낙서다짐’ 문구는 문 교사가 직접 써넣은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공부할 때나 심심할 때, 틈틈이 정신줄을 놓고 마음을 비우고 멍 때리다가, 스마트폰은 멀리 집어던지고 이 낙서장에 볼펜이 뽀사지도록 열나게 낙서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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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고 학생들이 낙서장 <낙장불입>에 낙서한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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