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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5일 서울 은평구 연신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청소년 리더 연수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이 사전투표 체험을 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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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민주시민교육
졸업식 날 한 무리의 학생이 모였다. 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졸업 뒤 한 달에 한 번 강남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회장은 김아무개군으로 정했다. 안 오는 사람은 벌금 만원, 십분 늦으면 천원을 내기로 규칙을 정했다. 첫 모임날 이아무개군이 5분 지각했다. 한 친구가 이군에게 5분 늦었으니 500원을 내라고 했다. 이군은 10분 늦었을 경우 벌금을 물기로 했으니 그 전에 오면 봐주는 게 맞다며 돈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모임에서 그 법(규칙)에 대해 분쟁이 생겼다.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관이 있다면? 이황희 헌법연구관은 위 사례를 이야기하며 “이런 분쟁을 해결하는 곳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라고 말했다. 지난 2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재 대강당에 대학생 90여명이 모였다. ‘현대 한국정치의 이해’라는 과목을 신청한 경희대·국민대·동국대·숙명여대 학생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기획 아래 서울시선관위가 운영하는 대학생 학점인정 과정이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에 헌재 외에도 외교부·선거연수원·국회의사당·입법조사처 등을 직접 방문해 특강 및 현장 체험학습을 할 계획이다. 학생들은 이날 헌재가 언제 생겼는지부터 헌법소원(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에 의하여 기본권의 침해를 받은 사람이 직접 헌재에 구제를 청구하는 일)과 위헌법률심판(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가를 심사하고 판단하는 것) 등 헌재의 구실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이 수업에 참여한 동국대 신승아(정치외교학과 4)씨는 “공대 같은 경우 참여 실습 프로그램이 많은 데 반해 사회과학 계열은 상대적으로 프로젝트나 실습 프로그램이 적은 학교가 많다”며 “이 프로그램은 현장 실습 위주로 짜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듣게 됐다”고 말했다. 입시경쟁과 취업준비에 치여청소년·대학생에게 ‘정치’는 먼 얘기
선관위, 미래 유권자들 위해
정치 참여 관련 프로그램 마련
헌재·외교부 등 직접 가서 강의 듣고
사전투표 체험하며 선거제 접해
성인 되어 자기 권리 잘 행사하길 특강이 끝나고 이어진 이 연구관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최근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온 듯 ‘대법관 선출 과정의 문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동성결혼 합법화’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보였다. 국민대 김홍균(정치외교학과 4)씨는 “학교 강의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도 영향을 끼치고, 책에 나온 한정된 정보만을 다룬다”며 “헌법연구관과 대법관 선출·임명 방식이나 판례 연구 등을 이야기하며 헌재도 우리가 품었던 의문점이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연수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삼포 세대’라 불리는 대학생들이 알바에 취업 준비까지 정신없는 상황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초·중·고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인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다. 교과서에 나온 정치나 선거제도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암기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성인이 된 뒤 투표권이 주어진다고 갑자기 정치의식이 생길 리 없다. 서울시선관위 김남이 홍보과장은 “조사해보면 20대 정치참여도가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며 “진로나 취업에 치여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건 사회·경제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젊은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제도화되려면 본인 스스로 자기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은 표가 안 나오는 곳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치참여는 고유한 의무이자 권리다.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바꾸고 민주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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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현대 한국정치의 이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이황희 헌법연구관의 강의를 듣고 있다. 서울시선관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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