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13 22:01
수정 : 2015.04.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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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영여중 독서치료 동아리 학생들이 도서관에 모여 자신들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윤경 사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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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치료 사서모임 ‘독사’
서울 양천구 봉영여중 김아무개양은 점심시간에 늘 학교 도서관에 갔다. 집단따돌림의 피해자였던 김양에게는 함께 밥을 먹을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 오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친구 없이 밥을 먹는 모습을 다른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김양에게 학교 도서관은 은신처였다. 어깨가 처진 채 학교를 오가는 김양에게 담임교사는 학교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독서치료 동아리에 참가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김양은 독서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해 전윤경 사서가 읽어주는 책 이야기를 친구들과 함께 듣기도 하고,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써 책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김양에게 독서치료 동아리 활동은 치유의 시간이자 새로운 활로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점심시간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왕따’를 당하면서 견뎌야 했던 일들을 글로 쓴 김양에게 전윤경 사서가 “책을 써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라고 묻자, 김양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뭘 어쨌기에’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잘못이 없는데 괴롭힘을 당한 것 같아요.”
중학교 학교도서관 사서들
상처 많은 아이들 보듬으려
독서치료 프로그램·동아리 만들어
익숙한 문학작품 함께 읽으며
나와 타인 들여다보는 시간 통해
어깨 처진 아이들 미소 되찾기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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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영여중 전윤경 사서가 독서치료 사서모임에서 다양한 독후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전윤경 사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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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서는 “김양은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했어요.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자괴감에 빠지기 쉽죠. 그런 아이들에게 ‘내 잘못이 아니다’는 깨달음은 큰 치유가 됩니다. 이런 객관화를 통한 치유에는 간접적으로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관찰하고, 다양한 감정이입을 경험할 수 있는 책읽기 활동이 도움이 되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3년째 독서치료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전 사서는 독서치료를 연구하는 중등 학교도서관 사서들의 동아리 ‘독사’(독서치료하는 사서)의 회장이다. 2014년 초 서울독서교육지원본부에서 연 독서치료 연수에 참가했다가,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나 연구모임까지 결성하게 됐다. 독사의 회원들은 20여명의 중등 도서관 사서들이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서울 창덕여중 안의 서울독서교육지원센터에 모여 각자 맡은 책을 펼쳐놓고 어떻게 독서치료 및 독후활동을 할 수 있을지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독사의 활동 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교과서 속 문학작품들을 독서치료 소재로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지난 2월 그동안 연구한 자료를 모아 서울시교육청 독서·인문사회 교육팀과 함께 발간한 교육자료집 <2015 활동중심 학교도서관 독서프로그램 모형: 중학교 교과과정 중심으로>에는 <수난이대>, <자전거도둑>, <동백꽃> 등 ‘국민문학작품’ 22편으로 하는 독서치료 길잡이(패스파인더)가 있다.
독서치료 길잡이는 ‘전반적 인식’, ‘카타르시스’, ‘자기적용’ 등 독서치료에서 사용하는 발문의 5단계에 맞춰 작품을 읽은 뒤 학생들이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질문을 제시한다. 김유정의 <동백꽃>의 경우 ‘만약 나에게 점순이처럼 대하기 불편한 친구가 있다면 좋은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통찰), ‘주인공과 다른 나만의 방법으로 갈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자기적용)과 같은 질문들이 제시되어 있다.
전 사서는 “좋은 문학작품들이 교과서라는 형식 안에 있을 때 갖는 한계를 독서치료 프로그램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과서 속의 작품들은 교육적으로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친숙하죠. 하지만 단점도 있어요. 학생들은 교과서 속 작품들을 ‘시험공부용’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결국 교과연계 독서치료 모형 개발에는 ‘교과서’라는 틀에 갇혀 학생들이 잘 보려고 하지 않던 작품들의 숨겨진 매력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국어 교과서는 그 자체로 훌륭한 독서치료 길잡이다. 독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 양서중 장귀숙 사서는 “같은 작품을 읽어도 학습 분위기에 따라 학생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국어 교과서를 보면 문학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시되는 활동 질문들이 있는데, 이 질문들이 독서치료에서 사용하는 문항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독서치료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는 데 있죠. 아무래도 이 시간은 교과 수업보다는 소수로 진행하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가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덕분에 같은 질문을 했더라도 아이들 각자의 진정성 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확률도 높습니다.”
독사의 교육 자료집은 서울시교육청 누리집(www.sen.go.kr)에 공개되어 있다. 이 자료집에는 교과연계 독서치료 프로그램의 활동지 예시는 물론, ‘나,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나’라는 주제로 학교 도서관에서 진행할 수 있는 독서 프로그램들에 대한 교육자료도 많다. 아이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책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은 공개되어 있는 자료집을 참고하면 된다.
정유미 기자
ymi.j@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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