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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1 19:49 수정 : 2015.05.11 19:49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명령불복종교사>의 서동일 감독과 일제고사 거부로 해직을 당했던 최혜원 교사가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사들의 ‘일제고사 거부’ 투쟁기
지난 2008년 일제고사 시행 거부로
해임·파면 등 중징계 받은 교사들
다큐영화 <명령불복종교사> 14일 개봉
복종 강요하는 경직된 교육현장의 갈등
학생들과의 애틋한 모습 고스란히 담아
교사 제구실 고민하는 기회도

떠든 아이: 송용운, 윤여강, 정상용, 김윤주, 박수영, 설은주, 최혜원

떠든 사유: 명령불복종(?)

초록색 칠판에 흰색 분필로 ‘떠든 아이’ 명단이 적혀 있다. 그 옆에는 교사로 보이는 여자가 헤어지기 싫다는 듯 아이와 꼬옥 부둥켜안고 있다. 아이는 여자 품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명령불복종교사>(감독 서동일·제작 두물머리픽쳐스)의 포스터(사진)다.

사실 ‘떠든 아이’ 명단에 오른 이들은 모두 교사들이다. 2008년 10월14~15일. 교육부는 초6·중3·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명 ‘일제고사’라고 불리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를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이 시험에 반대한 교사들은 식물원으로 체험학습을 가거나 교내에서 특별활동을 하는 등 대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서울 초·중등교사 7명에게 해임,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 일로 해임됐던 최혜원 교사(상원초)는 “일방적으로 강요한 게 아니라 사전에 일제고사를 주제로 학생들과 충분히 토론을 거친 뒤 학부모와 학생에게 시험을 보거나 혹은 대체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원래 일제고사는 국가 학업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표집하는 게 맞지만 교육부는 대상을 전체 학생으로 확대해 경쟁체제를 부추겼다. 이런 어긋난 취지와 일방적인 시행 강요에 반발한 일부 교사들은 학생에게 시험을 치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영화 <명령불복종교사>는 일제고사에 거부한 교사들이 해임통보서를 받는 순간부터 이후 복직되기까지의 투쟁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서동일 감독과 최혜원 교사를 만났다. 서 감독은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교육 문제에 관심이 가던 도중 일제고사 파문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바로 농성중인 교사들을 찾아갔다”고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영화는 서 감독의 이전 작품이었던 <두물머리> 제작 일정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지 7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그는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해 전교조 법외노조화 논란과 세월호 관련해 비판성명을 낸 교사들이 징계받는 걸 보고 바로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카메라 들고 학교를 누비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생각해야 할 교육 현장의 당사자들이 이렇게 비교육적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영상 편집하는 내내 교사라는 신분이 교육공무원과 교육자 사이에서 갈등하며, 명령에 따르라고 하는 국가 앞에서 늘 복종해야 하는 존재인가를 고민했다.”

다큐 속에서 일부 학교 교감 등은 밤 9시가 다 돼서 직접 교사의 집에 찾아가 해임통보서를 줬다. 교사들이 집에 없는 경우 이를 배우자나 아이한테 대신 전하기도 했다. 다음날 해직 교사와 학생들을 떼어놓기 위해 교실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거나 심지어 경찰까지 동원해 교문을 막은 학교도 있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갑작스레 해직을 당한 탓에 교사는 물론 학생들도 상처를 받았다. 본인이 선택한 행동으로 교사가 불이익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했기 때문이다. 다큐 속 아이들은 “솔직히 나도 시험 안 봤잖아. 안 봤는데… (선생님이 잘린 게) 내 탓 같잖아”라거나 “일제고사 안 본 거 때문에 (선생님이) 해임당한 거 같아서 힘들고 괴롭지만 노력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해직교사들은 이 일을 겪으며 학교라는 공간, 교사 조직이 보수적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이들은 전체조회 때 “(지시에 따르지 않고 갈등을 일으켰다는 의미로) 학교에 먹구름을 가져왔다”며 낙인을 찍거나 상부 조직의 하수인 역할을 하거나 모른 척하는 동료 교사들 때문에 더 힘들었다. 해직교사들은 아이들과 학교 밖 공간에서 따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의 졸업식에만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학교 쪽 교장·교감은 직접 나서 수업 도중 해직교사더러 교실을 나가라는 등의 행정집행을 했다. 한 학교는 “나라에서 선생님을 너희와 분리하란다”라고 말하며 학교 현관 앞에서 교사를 에워싼 학생들을 직접 떼어내기도 했다.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과 함께 방학 동안 치유 캠프를 열어 서로의 마음을 다독였다. 최 교사는 “너희들의 선택이 틀린 게 아니라고 말해줬지만 그 경험 자체로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했기 때문에 미안하고 걱정돼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또 교육청 앞에서 집단 노숙농성을 하며 부당 징계 철회를 주장했다.

2009년 12월31일. 서울행정법원은 해직교사들이 서울시교육청을 대상으로 낸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이전, 이후 사례에 견줘 교사들이 받은 중징계가 징계권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이후 교육청의 잇따른 항소로 2년8개월여 동안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교사들은 2011년 3월이 돼서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결국 교사들의 ‘명령불복종’이 합당한 것이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서 감독은 “이 영화는 옳지 않은 것에 반대했을 때 국가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라며 “세월호 참사만 봐도 문제가 발생하면 덮고 감추려고만 한다. 정부나 학교 당국이 사고나 문제가 생기면 진상을 규명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최 교사도 “그 일을 겪으면서 옳은 일을 하면 불이익을 당한다는 걸 알았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한번 잘리기까지 했는데 뭘 못하겠나. 내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신한다. 아이들에게 죽은 지식을 씹어 뱉어서 먹여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교육 내용을 재구성하고 스스로 의미를 찾게 하는 게 교사의 구실이다.”

2013년 세상을 떠난 전북 장수중 김인봉 교장은 당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떠난 8명의 학생을 결석처리 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가 다큐 속에서 남긴 말은 지금도 여전한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평가의 획일화는 교육의 획일화이고, 이것은 결국 인간과 사회의 획일화다. 1%도 다른 걸 인정하지 않는 교육계의 경직된 모습이 안타깝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한 <명령불복종교사>는 스승의날 전날인 14일 개봉한다. 개봉관은 서울 인디스페이스와 인디플러스를 비롯해 전국 6개 극장이다.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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