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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전 8시45분께, 아침 연습을 마친 경기도 안산시 고잔고 배구클럽 학생들이 함께 모여 포즈를 취했다. 뒷줄 왼쪽에서 셋째가 조종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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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학교스포츠클럽 운영사례
‘아나공’(‘옜다 공’의 경상 방언)이라는 말이 있다. 학생들에게 공을 하나 준 뒤 뛰놀 아이들만 알아서 놀게 하는 고교 체육수업을 칭하는 말이다. 이 말은 무의미하게 운영되는 일이 많은 체육교과 운영실태를 비꼬는 말이다. 학교 현장에서 체육시간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수행평가를 위해 최소한의 수업만 하는 경우도 많고, 입시가 가까워 올수록 체육시간을 자습시간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공 튕기기’ 등 평가 위주 체육시간시험기간 오면 자습시간으로 전락
스포츠클럽 등 내실 갖춘 학교들
일반 학교들과 달리 활성화방안 모색
1시간 일찍 등교해 배구연습하고
친구 운동 도우며 봉사하는 학생들
교내 경기 열어 배운 내용 활용하며
몸·마음 성장하는 시간으로 꾸려가 학교의 아침 깨우는 ‘굿모닝’ 배구반 지난달 30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고 2층 체육관에서는 이른 아침 7시 반부터 기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배구코트 양쪽에서 학생들이 언더핸드패스를 연습하고 있었다. 한쪽 코트에서는 여학생들이, 반대쪽 코트에서는 남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날아오는 배구공을 양 손목으로 튕겨 올렸다. 등교하는 날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열리는 고잔고 배구클럽의 연습시간 풍경이다. “배구 경기 안 해보셨죠?” 어떻게 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냐는 질문에 학생들이 입을 모아 반문했다. 보통 체육시간에 배구를 배운다고 하면, 손목으로 공을 몇 번이나 튕겨 올릴 수 있는지 등 기능 위주의 수업이나 평가를 한다. 이렇게 배운 기초적인 기능을 배구 경기에 활용할 기회는 많지 않다. 시험기간에 체육시간을 자습시간으로 이용하는 고교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고잔고 학생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고잔고는 선수는 아니지만 체육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끼리 함께 운동할 수 있는 ‘학교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한 학교 가운데 하나다. 이 학교에서는 배구·배드민턴·농구 등 학내 다양한 스포츠클럽을 운영한다. 거의 모든 전교생이 최소 한 종목 이상의 스포츠클럽에 소속되어 있다.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종목은 배구다. 프로 데뷔를 준비하는 배구부는 없지만, 학생들은 선수 못지않게 연습에 열심히 참여한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9시 등교를 실시하지만 배구반 아이들은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체육관에 모인다. 8시부터 아침자습을 하는 3학년 학생들은 7시 전에 체육관에서 혼자 공을 가지고 운동을 하다 자습실로 가기도 한다. 매일 아침 배구연습에 참가하는 여학생들은 자율동아리 ‘굿모닝여당당배구반’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아침마다 나와 교사나 선배들에게 배구를 배우고, 경기도 한다. 학교도 학생들의 체육활동을 지원한다. 매 학기, 매해 남녀 종목별 ‘고잔컵’ 등 대회가 열리고, 토요일이나 금요일 방과 후에도 체육교사들이 나와 아이들과 함께 경기종목을 연습한다. “스포츠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따라 경기에서 지기도 하고, 힘을 합쳐 이기기도 하잖아요. 축구나 농구 같은 종목은 초·중학교 때부터 많이들 하는 운동이라, 어릴 때부터 이런 운동을 해왔던 아이들은 잘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못하는 등 수준 차이가 크거든요. 하지만 선수지망생이 아닌 한 아이들이 배구를 배울 기회는 많지 않아요. 한번도 배구를 배워보지 못했던 학생들이 고교 때부터 처음부터 함께 배워나갈 수 있죠.” 배구활동을 담당하는 조종현 교사의 말이다. 고잔고에서 학교체육활동을 장려하는 데는 학생들의 건강 외에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고잔고는 지난해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아이들을 잃은 단원고와 가까운 곳에 있다. 고잔고에도 세월호 사건으로 중학교 동창이나 교회 선후배를 잃은 학생들이 많다. 조 교사는 이런 상황에서의 체육활동이 아이들의 정서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다들 가까운 사람을 잃었더라도, 그 사건에 대해 서로 말을 하지 않아요. 감정을 풀 곳이 필요한데, 모두가 아픈 상처들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 마땅한 창구가 없죠. 운동을 하면서라도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고, 감정을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서 다른 체육 교사들도 같은 생각이에요.” 배구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도 남다르다. 구성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참가비 5만원을 모아 지역에서 열리는 생활체육 배구대회에 출전할 정도다. 배구반 학생들은 수험생이 되어서도 배구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3학년 임혜린양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돌아가면서 종목별로 연습시간이 있는데, 저는 3학년 여학생들이 배구연습을 할 수 있는 목요일만 기다려요”라고 말했다. “체력이 좋아지면 공부가 잘된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죠. 특히 배구라는 종목에 매력을 느끼니까, 곧 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 풀었다’ 싶어 더 개운한 기분으로 교실로 와요.” 많은 스포츠경기가 그렇지만 배구는 특히 협동이 중요한 종목이다. 상대편 친구뿐 아니라 같은 편 친구들의 움직임도 예상하며 패스를 한다. 그러다 보니 또래들 간의 관계도 좋아지고, 자연스럽게 인성교육도 된다. 체육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는 3학년 박여원양은 “체육시간에 많이 하는 피구 종목은 잘하는 아이들이 늘 정해져 있어요. 하지만 배구는 각자의 위치가 있거든요.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다른 친구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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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잔고 여자배구자율동아리 ‘굿모닝여당당배구반’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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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뛰노는 학교 만들기’ 응원합니다 학교 체육활동 돕는 창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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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에서 지정한 학교스포츠클럽 리그운영 지원센터의 누리집 화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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