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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9 14:13 수정 : 2005.10.10 14:02

<스타강사 이만기의 언어영역 해부>


전상국 ‘동행’

[줄거리]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키 큰 사내와 키 작은 사내 ‘억구’, 낯선 두 사람이 동행이 되어 강원도 산골의 눈 덮인 밤길을 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춘천 근화동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두던 둘은 어릴 적의 일을 말하게 된다.

키 큰 사내의 회고담은 토끼 사냥에 얽힌 이야기이다. 해부용으로 쓰일 토끼를 잡으러 갔다가 새끼 토끼를 잡고 어미 토끼는 놓치고 만다. 그때 어미 토끼의 ‘살기 차고 공포에 질린’ 모성을 보게 된 그는 생물 시간에 해부되었다가 수업이 끝난 후 술안주가 될 새끼 토끼를 구하려 했지만 도덕적 규범 때문에 결국 생물 선생님 집의 얕은 담을 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억구가 자신의 일을 말한다. 아홉 살 때였다. 억구는 자신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는 득수의 장갑 낀 손을 물어 뜯어 살점이 드러나게 했고 그 벌로 계모한테 붙들려 광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후로 억구는 추위와 어둠의 공포를 강박 관념처럼 갖고 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동네의 천덕꾸러기로 따돌림 당하던 그는 6·25 때 빨갱이로부터 감투를 얻어 쓰고 득수를 죽였다. 그런데 북한군이 물러가고 국군이 들어오자 이 일이 원인이 되어 득수의 동생 득칠이가 억구의 아버지를 죽여 버린다. 억구는 간신히 도망쳐 지금까지 힘들게 서른여섯 해를 살아야 했다. 그리고 부친을 죽인 득칠을 죽이고 자신은 부친의 무덤에서 죽으려고 지금 구듬치 고개를 오르고 있는 것이다.

억구는 부친의 무덤이 있는 산에 이르자 스스로 득칠이를 죽인 사실을 실토한다. 그를 놓칠까 경계하던 키 큰 사내(형사)는 토끼 새끼를 구하기 위해 넘으려다 사회 규범이 무서워 넘지 못한 담을 회상하며, 이제야 그 담을 넘을 결심을 하게 된다. 형사는 권총이나 수갑 대신 열여덟 개비 남은 담배갑을 건네며 하루에 한 개비씩만 피우라고 웃어 보인다. 담배를 받은 억구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주제] 6·25가 남긴 상처와 그에 대한 연민

[해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살인을 하고 36년을 쫓겨 다니는 억구가 지닌 삶의 상처와 이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을 보여주고 있는 여로형 소설이다. 대립적인 인물이 동행이 되어 구듬치 고개를 오르고 있는 설정은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다. 뿐만 아니라 외모, 옷차림, 행동 등이 대립적으로 설정된 쫓기는 자와 쫓는 자가 동행한다는 설정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도 안정감을 준다. 와야리로 향하는 두 사람의 여로 중앙에는 구듬치 고개가 놓여 있다. 둘의 갈등은 고개를 오르는 과정을 따라 점차 상승하다가 고개를 내려오면서 서서히 풀리게 된다. 이와 같은 내용과 형식의 일치도 구성의 안정성을 느끼게 한다.


[지문] 어깨를 잔뜩 구부리고 흡사 한 마리 흰 곰처럼 산을 향해 걷는 억구의 을씨년스럽고 초라한 뒷모습에 눈을 주고 선 큰 키의 사내는 한참이나 그렇게 묵묵히 섰다가 문득 큰길 아래로 내려서서 억구 쪽으로 따라가며,

“노-형, 잠깐!”

말소리 속에 강인한 무엇인가 깔려 있는 듯싶었다.

언 바짓가랑이를 데걱거리며 걸어가던 억구가 주춤 멈춰서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큰 키의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오버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엇인가 움켜쥔 그런 자세였다.

억구가 짐짓 몸을 추스르며 자기에게로 다가서는 큰 키의 사내 거동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억구 앞에 멈춰 선 큰 키의 사내가 할 말을 잊은 듯 멍청하니 고개를 위로 향했다. 고개를 약간 젖히고 입을 헤-벌린 채. 그의 이러한 생각하는 표정 위에 눈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날 밤 난 생물 선생네 담을 빙빙 돌고만 있었지. 내 키보다두 낮은 담이었어. 난 거푸 담을 돌고만 있었지. 만약 내가 담을 넘어 들어간다면…. 그러나 난 담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담이란 남이 들어오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거니까. 들어오지 말라는 걸 들어가면 그건 나쁜 짓이니까, 그건 도둑놈이지. 난 나쁜 놈이 되는 건 싫었으니까. 무서웠던 거야. 나는 담만 돌며 생각했지, 오늘 갑자기 생물 선생넨 무서운 개를 얻어다 놓았을지도 모른다고. 또, 어쩌면 선생이 설사 나서 변소에 웅크려 앉았을지도 모른다는 지레 경계를…. 그리고 남의 담을 넘는다는 건 분명 나쁜 짓이라고…. 무서웠던 거야. 결국, 난 새끼 토낄 구할 생각을 거두고 담만 돌다 돌아오고 말았지.

“아니 선생, 남을 불러 놓군 왜 그렇게 하늘만 쳐다보슈?”

억구가 말했다.

---나쁜 놈이 되기가 싫었던 거야. 담을 넘는다는 건….

큰 키의 사내가 한 걸음 물러섰다. 생각하는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

산 속 소나무 위에서 다시 눈무더기가 쏴르르 쏟아져 내렸다. 마치 그 연약한 나뭇가지 위에선, 그리고 거푸 내려 쌓이고 있는 눈의 무게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듯.

억구가 다시 다그쳤다.

“선생, 발이 시립니다. 내가 여기 얼어붙어야 좋겠소? 원 별 양반도…. 자, 그럼….”

억구가 다시 몸을 돌려 산을 향했다.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그의 깡똥한 양복 윗주머니에 삐죽하니 2홉들이 소주병 노란 덮개가 드러나 보였다. 순간 망설이던 큰 키의 사내 얼굴에 어떤 결의의 빛이 스쳤다. “아, 노형, 잠깐!”

억구가 바짓가랑이를 데걱거리며 다시 몸을 돌렸다.

순간 큰 키의 사내는 오른쪽 오버 주머니에서 서서히 손을 뺐다. 그리고 무엇인가 불쑥 억구 앞으로 내밀었다.

--- 나는 담만 돌았지. 무서웠던 거야.

“이걸 나한테 주시는 겁니까?” 억구가 물었다.

“예, 드리는 겁니다. 아까 두 개비를 피웠으니까 꼭 열여덟 개비가 남아 있을 겁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으니 올핸 담배도 풍년이겠죠. 그러나 제가 지금 드린 담배는 하루에 꼭 한 개씩만 피우셔야 합니다.”

큰 키의 사내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후략>

유형문제

[문제] 다음은 앞부분에 서술된 회고담을 표로 정리한 것이다. 이를 참고로 위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형사가 억구를 그냥 보낸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한의 해소로 볼 수도 있겠군.

② 키 큰 사내가 형사가 된 이유는 불의를 배척하고 의를 지키려는 그의 선한 성품 때문이군.

③ 억구의 이후 행적으로 보아, 그의 회고담은 저돌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군.

④ 6?25 당시 억구가 득수를 죽인 심층적 이유의 단면을 억구의 회고담에서 찾을 수도 있겠군.

⑤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토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두 인물 모두 그 경험의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로군.

[풀이] 정답 ② 형사의 회고담을 통해 그의 선한 성품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형사가 된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또 잡힌 토끼를 구해주지 못했다는 점은 결단력과 실천력이 부족한, 혹은 사회가 정한 규범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형사의 성격을 보여준다.

유형노트

인물의 파악

소설의 인물들은 욕망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각자의 욕망과 의지가 충돌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것이므로 인물의 파악은 소설을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된다.

인물의 파악은 단순히 인물의 성격 파악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왔는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그를 둘러싼 환경은 어떤지 등을 모두 아우를 때 정확한 인물의 파악이 가능하다. 또 경우에 따라 인물의 외양, 옷차림, 이름 등에도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따라서 인물을 파악할 때는 인물의 대화와 행동은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사건과 외양까지도 신경을 써야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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