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화가 프레드릭 레이튼의 <알케스티스를 지키려 죽음과 싸우는 헤라클레스>. 출처: <명화로 보는 신그리스 신화>(현암사 펴냄)
|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 에우리피데스의 <알케스티스>는 비극적 상황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특이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에서 신의 역할과 신탁의 의미에 집착하지 않고 한 편의 ‘인간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본성 뿐만 아니라 인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짙게 깔려 있다.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번개를 만들어주는 키클롭스들을 죽인다. 이에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그 죄를 정화하라고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에게 가서 머슴살이하게 한다. 그러는 동안 왕의 호의를 받은 아폴론은 그에 보답하고자, 아드메토스가 죽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는 조건 아래 운명의 여신들이 그의 죽음을 포기하게 만든다. 아드메토스의 노부모들은 아들 대신 죽기를 거절하나, 아내 알케스티스는 남편 대신 죽기를 자청한다. 이때 마침 헤라클레스가 그의 궁에 들르게 되는데, 아드메토스는 아내의 장례 중에도 그를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한다. 이에 감동한 헤라클레스는 죽음의 신으로부터 알케스티스를 빼앗아 아드메토스에게 돌려준다. 이 이야기에는 모순적인 인간의 행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드라마에서 가장 난해한 인물은 아드메토스다. 우선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아내가 대신 죽겠다는 것을 말리지 않는 것부터 그렇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가 희생을 자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부모에 대해서는 불효 자식이다. 자기 대신 죽기를 거부한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아버지께서는 비겁함에 있어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십니다. 그토록 연로하시고 이미 인생의 종점에 도달하셨는데도 자기 자식을 위하여 죽을 의지도 용기도 없으셨으니 말입니다.” 한편 그는 전통과 관습을 깨고 초상 중에도 아무 일 없는 듯 외지의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고귀하고 지혜롭다는 평판을 얻고, 헤라클레스는 그에게 더 크게 보답한다. 그것이 결국 비극이 될 뻔한 사건을 행복한 결말로 이끈 것이다. 아버지 페레스의 처지도 간단하지 않다. 아들의 눈에 아버지의 행동은 비겁해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나라의 관습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페레스의 입장은 근거 있다. 아드메토스는 나라를 위해서 한창 일할 국왕 대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희생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페레스는 아들에게 “네가 네 목숨을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제 목숨을 사랑한다는 것을” 명심하라면서 생명이 누구에게든 소중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알케스티스의 희생은 숭고하다. 하지만 페레스가 말했듯이 그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으며, 어머니를 잃게 될 자녀들에게 무책임한 일이다. 아들 에우멜로스는 울부짖는다. “이 무슨 끔찍한 불행인가요! 아버지의 결혼은 허사였어요.” 물론 아드메토스가 자신의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살 방법을 한 번 알아버린 인간은 생명에 더욱 집착한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순진한’ 아폴론보다 인간의 사악한 면을 훨씬 깊숙이 꿰뚫어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고령에도 계속 다른 사람의 죽음을 살려고 할 것”이며 이는 ‘가진 자’의 특권이 될 것이라고 아폴론에게 반박한다.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윤리적 판단을 하고 규범을 세우며 윤리적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인생살이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 명료한 윤리적 해결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각자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이해 관계, 전통과 관습 규범,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과 의외의 사건에 대한 윤리적 대처 등, 인륜의 세계는 그 어떤 복잡계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윤리적 사건 해결의 상당수는 인간관계의 ‘분명함’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미묘함’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윤리의 문제는(이는 곧 철학의 궁극적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유하고 대화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더 읽어볼 만한 책은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