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학교 점심시간에는 떠들썩한 소리만큼 많은 일들이 생긴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얘기들을 이어가고 새로운 소식을 나누며 서로의 친밀감을 확인하기 바쁘다. 숨죽여 내던 목소리를 마음껏 지르고 장난치며 웃어대기도 한다. 이 시간을 위해 오전 수업을 버텨온 아이들은 그저 즐겁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에겐 이 시간이 고역이다. 매일같이 돌아오는 시간, 그것도 한 시간을 꽉 채워서 견디는 건 보통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니다.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내가 옆에 앉는 걸 꺼려하는 건 아닌지 눈치도 보고, 얘기에 자연스럽게 끼지 못하는 자신이 어색해 보이진 않을지도 신경을 쓴다. ‘숟가락에 잔반 모아 먹기’를 알게 된 날도 그런 점심시간 중 하나였다. 한 아이가 눈가가 빨개진 친구를 상담실로 데리고 왔다. “저희 애들끼리 며칠 전부터 재미삼아 숟가락에 잔반을 모아 가위바위보 진 사람이 먹는 걸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얘가 걸려서 먹었는데 좀 토했어요. 그거 보고 애들이 ‘너는 왜 그것도 못 먹고~’라는 식으로 뭐라 한 거예요.” 얘기를 더 들어보니 그 전에 걸린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먹었던 상황이고, 이 아이도 싫다는 내색 없이 계속 같이 해왔던 거였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평소에 애들이 저를 좀 싫어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였어요. 애들이 딱 대놓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라고 표현했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자아이들에게 특정 무리에 속하지 못한다는 건 비극이다. 무리에 속해 있더라도 단짝을 절실히 원한다. 겉보기에는 늘 같이 다니는 친구들 무리가 있어서 활기차지만, 정작 자신은 “언제 무리에서 튕겨져나갈지 몰라 불안하다.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단짝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불안이 무리에서 가장 약한 대상을 찾아내게 하는 것 같다. 위의 아이처럼 평소 다른 아이들과 활발히 어울리는 일 없이 조용하고 자기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이가 해당되기 쉽다. 어떤 아이들은 이런 아이들을 향해 “찌질하다”, “그냥 싫다”고 한다. 무리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따’를 당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리더격인 아이가 자기 상황과 마음에 따라 분위기를 만들고 나머지 아이들이 쉽게 동조해버린 결과다. 그러다가 종국엔 그 리더 아이가 무리에서 방출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애들은 자기와 단짝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어 관계의 균형이 깨지는 걸 굉장히 두려워한다. ‘셋이서 다니면 꼭 한 명은 소외가 된다’고. 소외되는 그 한 명이 자신일까 걱정하는 것이다. 잔반 모아 먹기를 했던 아이들도 유난히 못됐거나 문제 많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학교생활 잘하는 예쁜 아이들인데, 자기들끼리 있을 땐 파격적이고 놀라운 행동들을 곧잘 하는 것이다. 평범한 아이들의 가해행동이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자기 스트레스를 만만한 친구에게 쏟아내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메마르고 여유를 찾을 길 없는 아이들이 한정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뻔하지 않을까.
|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