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을 읽을때 감상 보다는 바른답 찾게 되어버린 학생들
안녕하세요? 헤르입니다. 기숙사 들어가고 난 다음부터 펑크가 많이 나네요. 죄송합니다. 지난 칼럼에 다시는 이런일 없을꺼라고 여러분들께도 말씀 드리고 제 스스로도 다짐했는데 거짓말 쟁이가 되어버렸네요. 비겁한 변명이 겠지만 지난주 일요일에는 기숙사 들어간다고 정신이 없어서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 2교시 문학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먼저 저희학교의 문학수업 방식을 설명드려야 겠네요.조별로 앉아 토론위주의 수업을 하고 그 내용의 발표횟수에 따라 점수를 받는 형식입니다. 3월 학년초에 들었던 생각은 '아, 창의적인 사고를 중요시 하는 교육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보여주기위한 수업을 제외하곤 이렇게 토론식 수업을 한 적이 없었으니 기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수업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 토요일 문학시간에 발견했습니다. 창의적인 토론식 수업, 그러나 모두가 똑같은 대답 어제 문학시간에는 박두진시인의 '너는 어서 오너라' 라는 시를 조별로 해석을 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하나같이 전부다 같은 해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자습서에서 보니깐 여기서 나오는 복사꽃과 살구꽃은 봄이 왔다는걸 이야기 하니깐 우리나라의 독립이고 여기서 너는 헤어진 우리나라의 동포이고.....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이 말뜻은 이거고.. 저 말뜻은 저거라는데.......' 그때 저는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냥 이 시를, 이 시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걸까? 선생님도 그걸 바라시고 이 수업을 진행하셨을 텐데... 머릿속에는 '한 학교의 초청을 받고 찾아간 시인이 우연히 자신의 시에 대한 문제를 푼 적이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예상외로 그는 그 시험에서 굉장히 낮은 결과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아마 학생들의 발표가 성적과 이어져서인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학생들을 비난할수는 없습니다. 학생들도 이러한 사회에서 어쩔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그런 피해자들 이니깐요. 하지만 흔히 말하는 답이 없는 과목이라는 국어를 배우는 시간에, 그리고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한 토론식 수업에서 조차 학생들이 이렇게 획일화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이 모든게 단편적인 지식만 측정하는 시험을 치루는것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몇 개의 보기중에서 하나의 답을 골라야 하니 그 시험 출제자의 생각을 따라가야만 했겠지요. 우리는 학교에서 일제에 저항한 시인 윤동주의 서시를 배웁니다. 그렇지만 그의 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종교인의 시가 될 수 있고 혹은 한 사람이 자신을 성찰하는 시로도 볼 수있습니다. 우리가 20년 30년 후에 학교를 졸업해서 언젠가 문학작품을 읽을 기회가 무수히 많겠지요. 그 때에 되어서도 문학참고서를 뒤져가면서 '이 단어는 이 뜻이고 저 단어는 저 뜻이고'라고 사고하게 된다면 과연 누가 책임을 질까요?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 김동현 기자 ©2005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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