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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4 16:59 수정 : 2005.10.14 16:59

첫눈이 내린 지난 11월 26일. 중구청소년수련관에서는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3학년 학생 200여명이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야후(Yahoo), 로망스 등의 만화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만화가 윤태호는 지난 1988년 허영만과 조운학 작가의 문하생으로 입문해 만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 후 빠른 성장을 거쳐 1993년 월간 점프에 ‘비상착륙’을 연재하기 시작해 2000년 부킹에 야후를 연재하면서 인기 만화가의 대열에 올라섰다. 문화콘텐츠 앰배서더로 위촉된 윤태호 만화가의 첫 강의를 정리해본다.

미술로 시작해 다시 만화로

윤태호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학교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 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4년동안 자신의 만화를 그렸다. 또 어린 마음에도 대학진학은 필수라 여겨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미술부 생활을 꾸준히 했다. 나름대로 인생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윤작가는 고 2때 돈 한푼 없이 온 가족이 고향인 광주로 내려간다.


“도망치듯 광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어디에 짐을 풀어야 할지 알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미술을 할 수는 없었죠. 좌절한 나는 고 2때 소위 말하는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다 고 3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했습니다. 국립대 미술교육과 시험을 보는데 미술교육과는 실기가 10%라 그런지 주위의 다른학생들은 정말 그림을 못그리더군요. 나름대로 미술에 자부심을 가진터라 그런 학생들과 경쟁한다는 것에 큰 수치심을 느꼈죠.”

실기 시험보는 순간 대학 진학을 포기한 윤 작가는 대학합격자 발표 다음날 아버지에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고 싶다며 만화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초등학교 3학년때의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만화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1988년 서울로 올라가 생전 처음보는 사촌형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처음보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던 윤 작가는 사촌형의 집에서 나와 노숙을 시작했다. 낮에는 강남역 근처에 있는 만화학원에 다녔고 밤에는 강남역 분수대와 국기원 옆 벤치에서 잠을 자며 몇 개월 노숙을 했다. 그래도 만화를 그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고.

내 자신의 진정한 가치 깨달아야

9월말 꽤 쌀쌀한 어느날 한 아파트 공원에서 잠을 자기 위해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었다. 자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때리면서 ‘여기서 자면 죽어요!’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잠잘 곳이 없어서 자는데요.’ ‘머하는 사람이요?’ ‘만화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나는 클래식 기타를 치는 사람인데 창작을 하는 사람끼리 우동이나 먹읍시다.’ 그 사람은 이렇게 윤 작가에게 우동 한그릇을 사주며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당시 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쌓였던 상태였어요. 여러상황에서 만화를 배우러 왔음에도 열심히 하지 않는 학원 사람들이 정말 못마땅했고 이런 나를 학원 사람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날 깨달은 겁니다. 남을 부정하면 나 자신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표피적 성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거죠. 노숙자인 나에게 다가와 따뜻한 우동과 마음을 주었던 그 사람에 의해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죠.”

만화, 그림과 스토리 둘다 중요해

그 후 윤 작가는 그토록 원하던 허영만 작가의 화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실력을 인정받아 다른사람들이 1년 걸릴 것을 단 3개월만에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너무 바빠 자신만의 작품을 할 시간도 없었던 그는 조운학 작가의 화실로 옮겨가게 되고 그 후 작품 데뷔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들고 직접 출판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출판사는 그림에 자신있었던 그에게 처음부터 일본잡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그려오라고 지시했고 7번을 퇴자를 맞았다. 그리고 결국 아이큐 점프에 자신의 만화를 연재하게 되었는데.......

“인쇄된 내 만화를 보니 정말 고개를 들수도 없더군요. 너무나도 재미없는 얘기에 지나치게 공들인 그림. 독자의 외면은 당연했습니다.”

잡지 연재는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윤 작가는 바로 다시 화실로 돌아가 몇 년 동안 스토리만을 공부한 후 데뷔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 비용 지불하고 꼭 얻어야

이렇게 길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얘기한 윤 작가는 ‘자신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나라면 할 수 있는 것과 나라서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자신의 쌍둥이 형은 15년의 세월을 돌아 지난해 대학에 입학해 미술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밝히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하고 그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비용을 주고 그것을 얻어야 합니다. 쌍둥이 형은 미술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해 그 대가를 15년의 세월을 주고 치렀고 나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말을 함으로써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자기 주장을 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꼭 해냈으면 합니다.”

윤 작가의 강연에 이신효 학생은 ‘예체능계에 있어서 선생님의 말이 정말 마음에 와 닿는다’며, ‘내가 앞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말했다. 연현주 학생은 ‘그런 여건가운데서도 열심히 하셔서 이렇게 성공한걸 보니 정말 존경스럽다’며, ‘정말 구체적으로 인생을 계획하고 선생님 말처럼 내 발밑을 보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인터뷰] 윤태호 만화작가 "애니메이션 감독 되고 싶다"

-만화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조언 한마디.

▲ 만화는 창작활동이며 아울러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다. 사람과의 관계를 예민하게 들여다 보고 체계화 하는 버릇을 들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인문학, 사회과학 등의 교양을 많이 쌓기를 바란다. 만화가는 이런 분야에 높은 교양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은.

▲ 올해 인덕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 입학했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 일단 내년 졸업 후에는 동기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이며 향후 장편 또는 TV 애니메이션도 제작하고 싶다. 만화연재는 현재 생각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해.

▲ 산업 규모에 비해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고 체계화 되어 있지 못한 것 같다. 또 만화산업도 마찬가지지만 현재 각종 지원사업이 많이 활성화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사업은 어떤 성과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지원 받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이 된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일단 시장에 맡겨야 한다. 시장에 맡겨 자생력을 키워주었으면 한다.

허혜진 기자(newsinfo@koc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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