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4 17:11
수정 : 2005.10.14 17:33
예정된 강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강도영 작가를 만났다. 크고 넉넉한 몸매만큼이나 시원스런 웃음과 느긋함이 느껴지는 강도영 작가와 함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체육관으로 갔다.
체육관에는 300여명의 장충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학생들 앞에서는 강연 준비가 한창이다. 강 작가는 학생들이 앉아있는 가운데로 들어가 앉았고 학생들은 자꾸 힐끔힐끔 강 작가를 쳐다본다. ‘강의는 많이 해보셨나요?’ ‘대학 강의는 여러 번 해봤는데 고등학생들은 처음이에요.’ ‘학생들에게 어떤 얘기들을 해주실 생각이세요?’ ‘온라인 만화에 대해 많이 얘기하려고요.’
짧은 몇 마디가 오고 간 잠시 후 앰배서더 강연 담당자가 ‘순정만화의 강도영 작가님의 강연을 듣겠습니다’하고 말하자 강도영 작가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가고 학생들을 크게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만화의 작가를 실제로 보니 학생들은 마냥 신기한가보다.
온라인 만화 1세대, 강도영 작가
강도영 작가는 온라인 만화 1세대로 불린다. 고등학교때까지 그저 그림을 다른 학생보다 조금 잘 그린 정도였던 강 작가. 재수를 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총학생회 홍보부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매일 여러 주제로 대자보를 썼다. 하지만 매일 매일 바뀌는 여러 장의 대자보를 많은 학생들은 읽지 않고 지나쳤다.
어느날 강 작가는 대자보 내용을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고 이렇게 그린 대자보 만화는 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계속됐다. 한번도 만화를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했고 만화작가의 문하생을 해보지도 않았지만 그는 졸업할 즈음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전화번호부책을 한권 구해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 등 만화를 연재할 수 있는 모든 매체 심지어는 구청신문사까지 400여 군데에 원서를 넣었다고. 1년 동안 원서만을 넣은 그에게 결국 전화가 온 곳은 단 7곳. 그 중 6곳은 무료로 만화를 연재하라고 했다.
강 작가의 표현대로 그는 ‘하다하다 안되서’ 그 후 강풀닷컴 (www.kangfull.com)이라는 개인 사이트를 통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가 2003년 4월. 두달 뒤인 6월 그의 개인 홈페이지는 이곳저곳에서 그의 만화를 본 많은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포탈 사이트 다음을 통해 순정만화를 발표하게 됐다. 순정만화는 현재 영화화 판권계약도 되었으며 2005년에는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는 상태.
사회적 코드와 내 만화 잘 맞아 떨어져
“내가 온라인을 통해 데뷔를 한 것은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 사이트에서 똥만화로 인기를 모았는데 당시 엽기코드가 유행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메신저를 이용하기 시작한 때여서 내 만화가 엽기코드와 메신저를 타고 급속히 퍼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내 만화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마린블루스, 메가쇼킹 등의 온라인 만화가 네티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나 뿐 아니라 이런 온라인 만화가들이 인기를 얻은 것은 단순히 사회적 코드와 운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들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많이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온라인 만화 새로운 창구 될 것
자신이 만화가가 된 특이한 경로에 대해 말한 그는 만화가를 지망하는 학생이 있다면 꼭 지면만화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온라인 만화라는 새로운 창구에 도전할 것을 적극 권했다.
“온라인 만화가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쉬워요. 자신이 그린 만화를 여러분이 잘 보는 웃긴대학 혹은 디시인사이드 등의 사이트에 올리면 금방 네티즌의 반응이 오죠. 웃기고 재미있는 만화가 그렇지 않은 만화가 바로바로 걸러져 독자들의 취향을 살필 수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이 대세기 때문에 만화도 독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필요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꿈도 많고 고민도 많을 때입니다. 예전 시트콤에서 청년 실업 40만 시대라고 하면서 웃겼는데 이 말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온라인에는 길이 있다고 봐요. 나처럼 꼭 정도의 길이 아니고 다른 길도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 가지 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면 합니다. 또 저는 그저 막연히 꿈이 만화가라고 생각하고 3, 4년 동안 '나는 만화가다 만화가다' 되뇌이며 살아왔는데 정말 꿈이 이루어졌죠. 하지만 진짜 만화가라고 생각하니 참 허탈하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화가가 되고자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일종의 성취욕이었던 거죠. 여러분은 꿈이 직업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한 직업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직업 선택해야
강연 후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 학생이 ‘최근 신암행어사 애니메이션이 개봉됐다. 작가들은 한국작가인데 일본에서 활동한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이 일본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작업하고 싶지만 그들을 더 인정해주는 곳은 그곳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 힘들게 작업하는 것보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에서 활동하는 건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또 한국사람이 그리는 것이니 당연히 한국만화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 대답은 대여점, 불법스캔, 만화가에 대한 지원사항 등이 아직은 미흡한 우리 만화계에 대한 지적처럼 들린다.
한편 장충고등학교 3학년 김성현 학생은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길을 찾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다’며, ‘특히 꿈이 직업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직업을 갖는다라는 생각이 정말 신선하게 와 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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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도영 만화작가 “만화학과, 데뷔방법 가르쳐야”
-일반적인 만화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형식을 갖고 있는데.
▲대학교 때 그린 대자보 형식의 만화를 그대로 만화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래서 내 만화는 칸도 없고 빗금도 없고 그림과 글이 섞여 흐르는 형식이다.
어떤 기자는 내 만화를 무형식의 만화라고 했지만 특별히 만화를 배운 적도 문하생으로 들어간 적도 없어서 그런 형식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웃음) 하지만 대자보 자체가 설명과 설득이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만화로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토리훈련을 한 것 같다.
-온라인 만화의 저작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온라인 만화의 저작권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현재 온라인은 공짜라는 인식이 아주 팽배하다. 때문에 온라인 만화에서 저작권 주장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나는 내 만화를 많은 사람들이 출처만 밝힌다면 이곳저곳에 퍼가는(다운로드 받아 다른 곳에 옮기는 행위)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다만 그것을 상업적인 것에 이용하는 것은 절대 불허한다. 개인이 퍼가서 다른 곳에 알리는 것은 일종의 홍보라고 생각한다.
또 온라인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있으면 오프라인에서도 확실히 반응이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순정만화 1, 2권이 발간됐다. 처음에 출판사는 온라인상에 연재됐던 이 작품을 더 이상 온라인에서 볼 수 없게 하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온라인에서 만화를 볼 수 있으면 굳이 오프라인 책을 사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해 온라인 만화를 막지 않았고 이 만화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현재 이 만화책은 몇 달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10만부가 판매됐다. 때문에 온라인에서의 독자의 반응을 오프라인에서도 똑같이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온라인 만화가가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만화계에 대해.
▲사실 우리나라 만화관련학과들에게 불만이 좀 있다. 이들 학과에서 그림만 가르치고 스토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문제는 둘째치고 수많은 졸업생들에게 만화가로의 데뷔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전국의 많은 학과에서 매년 많은 학생들이 졸업하지만 이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갈 곳이 없고 데뷔도 극소수밖에 할 수 없다. 이들이 잡지사 편집자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독자들에게 인정받으면 바로 작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라인 만화도 하나의 길이라고 본다. 400번의 원서 접수 끝에도 데뷔를 못했던 내가 만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온라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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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혜진 기자(newsinfo@koc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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