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16 16:14 수정 : 2005.10.17 14:20

구렁덩덩 신선비

<다르게 읽기 깊이 보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나면 30~40번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거죠. 이렇게 꿰차진 내 이야기를 만나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얼른 들려주고 싶어요. 그냥 어설프게 들려주고 싶진 않아요. 아주 즐겁고 재미나게 이야기의 감동을 서로 느끼면서 나누고 싶거든요.

내가 청소년기 때 만난 이야기 가운데 ‘버리데기’ 이야기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내 이야기였습니다. 내 안에 뭐가 있나를 발견해 주고 비춰 보여주었던 내면의 거울이었으니까요. 내 처지에서 나를 끝없이 위로해 주고 성장시켰던 옛이야기였어요. 버려진 여자아이, 버리데기. 이름만 들어도 내 마음이 울렁거렸어요.

구렁덩덩 신선비
딸 일곱 있는 아버지가 이제 딸이라면 지긋지긋해, 막내 딸을 버리고 버립니다. 더위 먹어 죽으라고 햇볕에, 추위 먹어 죽으라고 응달에, 뱀이 우글거리는 뱀밭에, 삐죽삐죽 솟은 대나무 밭에 버리고 버리고 버렸지만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그 뒤 버리데기는 자기를 버린 아버지의 몹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이 세상 끝에 있는 시약산으로 약물을 구하러 떠납니다. 온갖 고생을 다 겪어 내면서 끊임없이 애쓰고 지혜롭게 맞섭니다. 자기를 죽어 버리라고 버린 아버지를 위해서 말입니다. 논 가는 할아버지를 만날 때 그 넓은 논을 다 갈아주고, 나무하는 할아버지에게는 산에 있는 나무를 다 해주고, 개울가 빨래하는 아주머니에게는 흰 빨래 희게 해주고 검은 빨래 검게 해주고, 패랭이 쓴 총각이 결혼해 달라 하니 결혼해 아들 셋 낳아 주면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냅니다. 착한 맘으로 오직 아버지를 살려내고 싶었던 버리데기는 그 곳에서 파란 숨살이 꽃 한 송이와 빨간 피살이 꽃 한 송이, 하얀 살살이 꽃 한송이씩을 얻고, 간절하게 빌고 빌어서 시약산 약물 세 방울을 얻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저기 저기 동네 어귀에서 아버지의 죽은 시신을 실은 상여가 나옵니다.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꽃상여가 나옵니다.

“딸 일곱 있는 아버지가 오늘 죽었네.

시약산 약물 뜨러간 막내 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네.”

그 상여를 붙잡고 관 속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다시 살려 냅니다. 그 뒤 버리데기는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곱 딸 가운데 둘째 딸인 나, 마치 나도 그런 존재였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딱’ 내 이야기다 싶었어요. 내 처지에서 이 이야기 한 편은 엄청난 의미를 주었고 그 때 내 무의식 속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서 그 힘으로 세상과의 관계를 잘 맺으면서 살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 지금도 그 때의 그 감동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소영(초등 2학년)이는 이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대요. 시약산 약물 한 방울 한 방울 얻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면서 혼잣말처럼 이래요. “그러면은 아버지가 자기를 버린 걸 다 용서하는 거네?”

이렇게 극진한 효심을 가진 버리데기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것을 가르쳐 줘요.

<구렁덩덩 신선비>(큰 제목 가운데 ‘버리데기’) 김중철 엮음. -웅진닷컴/7500원.

이숙양/공부방 활동가 animator-1@hanmail.net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