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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성북동 서울명수학교에서 한양여대 치위생과 2학년 이소연(21·사진 왼쪽)양과 황윤숙 교수가 한 장애아동의 잇몸과 치아를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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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없는 세상 만들기
한양여대 치위생과 동아리특수학교 구강관리 봉사 “하얘진 이 웃음에 기쁘지만
방치됐을 생각하면 가슴아파”
장애아 74~94% 치주질환
부모 인식전환·정부지원 절실 “기철아 여기 좀 앉아볼까. 자, 아! 해보세요. 잇몸이 부어 있네. 앞니 잇솔질 좀 할까?” 지난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정신지체장애 특수학교인 명수학교의 3층 강당. 한양여대 치위생과 학생들로 구성된 ‘한구동’(한양여대 구강건강 동아리) 학생들 10여명을 데리고 봉사활동을 나온 황선희(42) 교수가 아이들의 입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가 대여섯 개씩 썩은 아이, 치석이 심해 이 전체가 까뭇까뭇하게 변한 아이, 치주질환으로 잇몸이 퉁퉁 부은 아이 등 학생들의 상태가 안 좋다. 옆 탁자로 옮겨 앉은 기철(이하 장애학생이름은 가명·12·중1)이에게 이소연(21·한양여대 1학년)씨가 전동 칫솔로 잇솔질을 해준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서진(12·중1)이는 강당이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지만, 딸기 냄새 나는 치약맛이 좋은지 기철이는 그저 싱글싱글 웃는다. 기철이 옆에서는 순원(12·중1)이가 불소를 바른 일회용 트레이를 입에 물고 불소 도포를 받고 있다. 교사들은 잇솔질을 할 때 몸을 비틀거나 트레이를 입에서 마구 꺼내려 하는 아이들을 붙잡아주느라 정신이 없다. 한구동 회장을 맡고 있는 유미영(21·한양여대 2학년)씨는 “잇솔질과 불소도포가 끝난 뒤 서로 서로 이를 드러내놓고 하얘졌다고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기쁘기는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치아 관리 한번 못받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보통 아이들의 구강관리도 대체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 이런 상황에서 훨씬 불리한 여건에 놓여있는 장애아들의 구강관리가 어떤 상태에 있을지는 안봐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황윤숙(46·한양여대 치위생과) 교수는 “부모의 인식 부족, 치과의사들의 외면, 정책적 무관심 등으로 사각지대 중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게 장애아들의 구강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구동이 많고 많은 아동들 가운데 이 학교 아이들을 찾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아들의 구강 건강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통계를 통해서 뒷받침된다. 연세대 원주의대 치위생과 김영남 교수가 최근 전국 장애인 1476명을 대상으로 구강건강 실태조사를 한 결과 장애아동의 74~94%가 치주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장애 아동의 치주질환 비율(68%)에 견줘 높은 수치다. 치주낭을 가진 장애아의 비율은 비장애아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았다. 또 유치우식증(충치)을 경험한 5살 장애 아동의 비율이 63.6~80%로 비장애 아동과 비슷했으나 적기에 치료받지 못해 이를 빼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아동들의 구강 건강이 좋지 않은 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신체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제대로 잇솔질을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질환 등으로 구강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간질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간질약이 잇몸의 증식을 유도해 잇몸이 치아를 덮기 때문에 치주질환을 피해갈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이보다는 부모의 인식 부족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장애 치료나 관리에만 온 신경을 쓰다 보니까 건강의 기본이 되는 구강관리에는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장애아동 치과 봉사활동을 해온 치위생사 지은경(38)씨는 “처음에는 이가 아린 증세로 시작하는데 이 상태가 조금 더 지나면 고름이 나고 세균에 감염돼 심장병 등 다른 질병으로 번질 수 있다”며 “잇솔질만 꼬박꼬박 해줘도 장애아들이 겪는 대부분의 치과 질환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과진료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맘먹고 치과를 찾아도, 다루기가 힘들고 특수한 기기가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치과 의사들의 기피가 심하다. 그렇다고 장애인 전용치과병원이 있지도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장애아동의 구강건강 문제에 대한 접근은 일단 엄마의 인식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평생 챙겨줘야 하는 장애 치료처럼, 잇솔질 또한 중요한 건강 관리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칫솔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감이 심하거나 몸이 불편한 아이라면 불소 알약이나 불소 도포 등의 방법으로 예방조처를 취할 수 있다. 정책적으로는 특수학교나 장애인 시설에 치과위생사를 두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는 보건위생사밖에 없는데, 치과위생사를 배치해서 간단한 스켈링이나 치주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불소 알약이나 전동 칫솔의 보급도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명수학교 하영(38) 보건교사는 “선진국처럼 구강건강 관리를 무료로 해줄 수는 없더라도 편리하게 치과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구강건강 가이드 북을 내거나 부모 교육을 하는 등의 노력은 정부가 해줘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작은 관심이 가장 큰 치료죠” 22년째 무료봉사 황윤숙 교수 대한치과위생사협회 부회장을 맡고 한양여대 치위생과 황윤숙 교수는 22년째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황 교수는 장애아는 의사소통도 안되고 다루기도 힘들고 치료도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며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02년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발간한 장애우 구강보건 안내 점자책 <튼튼이의 치아사랑>을 읽은 많은 장애아들과 부모들이 ‘구강 관리가 이렇게 쉬운 일인줄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잘 관리했을텐데’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작은 노력이 아이들을 변화시킨 거죠.” 황 교수는 작은 관심을 확장시키는 노력으로 최근 협회 회원들 사이에 수화 배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했다. 청각 장애아동에게는 “아 하세요”라고 들리지 않는 말을 하는 것보단 수화로 대화를 하는 게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스스로 구강관리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기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장애아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강보건 교육도 협회 차원에서 진행해나갈 계획이다. 또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들을 찾아 장애아동 구강관리의 필요성과 요령을 알리는 작업에도 착수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장애아든 비장애아든 건강 문제는 사회와 국가에서 책임져야 할 부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뤄지기 전에는 민간 차원의 노력이 더욱 확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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