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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7 13:50 수정 : 2005.10.17 13:50

드문드문 은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굽슬굽슬한 머리칼, 만면에 그득한 여유로운 미소로 나타난 '도인같은' 그를 학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환영했다.

지난 4일 ‘문화콘텐츠 앰배서더’ 김진묵이 인천 계산여고 1학년 3반을 다녀갔다. 짧지 않은 시간, 크고 작은 강단에 서왔건만 이날의 그는 더욱 조심스럽고 분주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세상을, 이 아름다운 음악을, 저마다의 가슴 속에 숨쉬고 있는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줄 수 있을까. 한시간 반은 덧없이 짧게만 느껴졌다. ‘얘들아, 알고 있니? 너희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강연은 그가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에 '미쳐' 살았더라는 얘기, 음악 외의 것은 무시하며 반항하던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시작됐다.

오로지 음악만이 중요하던 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음악을 통해 더 많은 것에 궁금증이 생겼고, 그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됐다며 그는 음악이 단순히 음악만이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감각적인 소리 그 자체로서만 음악을 대하는 요즘 어린 학생들의 취향을 걱정하는 김진묵. 음악은 이미 대중의 삶의 패턴이자 일부로, ‘고민하지 않는’ 장르가 되어 사람들은 더 쉬운 음악, 더 싸구려의 편하고 자극적인 음악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는 학생들에게 좀더 고급의, 더 아름답고 의미있는 음악을 듣기를 부탁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 또한 고급음악은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더군다나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대중은 애써 고민하지 않으므로 싸구려를 편하게 듣게 되죠. 매스컴에서 공급받는 하향 평준화된 싸구려 음악이 여러분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요. 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지는 마세요.”

그는 아울러 삶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얘기하는 싸구려 음악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 전체를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돈보다 인간’이 아닌 ‘인간보다 돈’이라는 잣대 아래 자꾸만 잔인해지고 있는 자본의 위력과 위험성, 그에 맞춰 똑같이 하향조정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취향과 삶의 패턴을 안타까워하며 고전을 알고 즐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했다.

“내재적 미학, 즉 가치로 인정받는 것이 고전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숙성되어 사람들로부터 좋은 것이라고 인정받은 것들 모두를 일컫는 말이죠. 여러분이 지금 먹고 있는 음식들 또한 '고전'입니다. 우리는 무심코 먹고 있지만 우리 선대의 사람들이 끝없이 먹어 보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때론 죽기도 하면서 얻어낸 결과물들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죠. 고전이란 그런 것입니다.”

강연중 그는 가끔 노래를 흥얼거렸다. 요즘 아이들은 제목조차 알기 힘든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미아리 눈물고개’ 등. 세대를 뛰어넘는 고전이란 꼭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것만은 아니라며, 민중의 설움을 담고 사회를 반영하며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보편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 진정한 고전이라고 말했다.

가수도 작곡자도 아니지만 김진묵은 "아빠 세대로서의 책임감으로"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산조와 인도의 명상음악의 일종인 ‘라가’(raga)의 결합인 ‘쌍깃프렌즈’(Sangeet Friends)(‘쌍깃’은 산스크리트어로 ‘음악’이라는 뜻.)라는 한국․인도 퓨전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중. 이날 김진묵은 학생들에게 쌍깃프렌즈 앨범 중 한국연주자의 ‘달밤’과 인도연주자의 ‘달밤’을 들려주며 그 안에 깃든 보편적 정서의 같고 다름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들은 계속해서 시디를 타고 흘러나왔다. 남미의 혁명가‘체 게바라’를 찬양한 노래, 2차대전 당시 유태인의 아픔을 노래한 곡, 또 흑인들의 재즈풍 찬송곡까지. 김진묵은 각각의 음악에 담긴 세계사적 의미를 설명하고, 이처럼 음악을 통해 세계 역사 또한 읽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따금 그에게 '왜요?' 혹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라고 물으며, 가끔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흥미진진한 옛날 이야기 같은 강연에 집중했다. 된장찌개처럼 구수한 그의 말솜씨와 이채로운 음악 덕에 학생들은 아주 특별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정제된 음악, 고전을 들으세요. 고전을 통해 스스로의 향기를 갖추세요. 도처에 널린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져 이 아름다운 삶을 낭비해선 안 됩니다. ‘사카린’과 ‘조미료’가 들어있지 않은 정말로 고급스런 음악을 들으세요. 꼭 기억합시다. 인생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지금 여러분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인터뷰] “내 속에 음악이 있어”

- 오늘 강의는 어땠나?

강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그 느낌이 있는데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다. 학생들이 다행히 모두 한눈팔지 않고 들어줘 자신있게 강연할 수 있었다.(웃음)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은 좋지만 너무 인터넷에 노출되어 있어서 단편적인 지식에 빠져 그게 전부인 걸로 여기고 겨우 이름만 알 뿐인데도 전부를 아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안타깝다. 사전적 의미의 지식에서 벗어나 진짜 지식, 참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 '어느 순간 음악이 너무 시끄럽게 들렸다'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하루 16시간 이상씩 음악을 들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이제는 귀가 많이 상해버렸다. 의사가 묻더라. ‘직업이 뭐예요?’라고. 사실 요즘은 거의 음악소리를 못 듣는다. 들으면 귀가 아파서 스피커로 인간이 만든 소리는 무조건 싫다.

예전처럼 굶주림에 찾아 듣지는 않지만 거의 안 듣지만 그래도 들리면 듣고, 가끔 음악회도 가고, 내가 만든 음악도 듣는다. 변하지 않은 것은 내 속에 음악이 있다는 것. 이제 그 음악을 끄집어내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쌍깃 프렌즈’와 ‘어스 콘체르토’는 바로 이런 내 마음 속 음악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이다.

- 쌍깃 프렌즈와 어스 콘체르토라는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쌍깃프렌즈’(Sangeet Friends)는 한국의 산조와 인도의 ‘라가’(raga)를 조합해 만든 한국․인도 퓨전그룹으로, 2002년 2월에 인도에서 결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매 앨범마다 정해진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즉흥연주곡들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 2월달에는 또 인도 고아에서 어스 콘체르토(Earth Concerto)라는 월드뮤직그룹을 결성했는데 한국, 인도, 이란, 이라크, 모로코, 이스라엘 등 말그대로 ‘다국적’ 멤버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어스 콘체르토가 이번에 발표하게 될 음반의 주제는 ‘평화’. 우리 진도 씻김굿의 정신을 멤버들 각각이 즉흥적으로 연주해 담은 앨범이다. 녹음은 모두 끝났고, 믹싱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어스 콘체르토의 다음 작품은 아마도 ‘종교’가 되지 않을까. 각 멤버들의 종교인 힌두교, 기독교, 유태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 등에 불교까지 추가해 만들어보려 구상중이다.

- '김진묵'에게 음악은 무엇인가?

언젠가 인터뷰중에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더라. ‘삶의 의미가 뭐예요?’ 라고. ‘모르겠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하고 대답했더니 꽤 불쾌해하더라.(웃음) 그런데 난, 그것만큼 정확한 대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태어났으니 열심히 사는 거다. 물론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의미에 집착한다면 그건 분명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나 역시 어려서는 음악이 종교인 줄 알고 성장했지만 이제는 ‘산’을 오르는 수많은 길 중 하나로 여겨진다. 마흔이 넘고 쉰이 넘으니 마음은 더욱 편안해지고, 우리를 둘러싼 터무니없는 유혹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음악을 통해 깨달았다.

(음악에) 미쳐봤고, (음악이) 이끄는 대로 살았으니 후회 또한 없다. 나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봤고, 그것으로 만족한다.

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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